[주주총회 新패러다임] “작은 고추가 맵다” 소액주주제안 통과 잇따라

입력 2015-03-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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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주공 사외이사 선임안 찬성 의결… 경영권 분쟁서 ‘동맹군 결성’ 권리 행사

“내 밥그릇은 내가 챙긴다.”

2015년 주주총회가 31일로 막을 내렸다. 올해 주총시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이다.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행동주의’가 국내에서도 적극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일부 중소기업에서 소액주주가 제안한 감사가 선임되는 등 주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사례가 등장하는 등 과거보다는 주주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모습이다.

◇주총은 의례적인 행사?… 주주들, 제 목소리 높인다 = 30일 오전 10시, 서울 충민로 10번지 가든파이브홀 10층 회의실. 신일산업의 주주총회가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주총은 1시간을 훌쩍 넘기서도 열리지 않았고 ‘고함’과 ‘욕설’이 오가는 험악한 상황이 연출됐다.

같은 시간 열린 참엔지니어링과 한국토지신탁 주총 현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토지신탁의 경우 감정이 격앙된 일부 주총 참여자와 회사 측 관계자의 무력 충돌로 인해 구급차까지 동원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 기업의 주총은 오후들어서야 열릴 수 있었다.

이는 회사 측과 주주들 간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었다. 신일산업의 경우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는 슈퍼개미 황귀남씨와 황씨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현 경영진이 충돌하는 모습이었다. 참엔지니어링 역시 한인수 현 참엔지니어링 대표와 최종욱 전 대표와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주총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한국토지신탁의 경우 대주주 MK전자와 2대주주 아이스텀앤트러스트가 이사진 선임을 두고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였다. 위임장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신일산업과 참엔지니어링의 경우 경영권 분쟁이라는 다소 민감한 문제가 걸려있는 탓에 갈등이 다소 과열된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이는 그만큼 주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 경영진의 일방적인 안건에 대해 의례적인 찬성과 박수를 보내는 주총이 아닌 주주들이 목소리를 내고 주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주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주총에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많은 소액주주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토신의 경우 예상보다 많은 주주가 주총장을 찾은 탓에 접수처에서 주주 수를 집계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주총 개회가 한참이나 뒤로 미뤄지기도 했다. 특히 앞서 열린 주총에서는 소액주주 측의 사외이사와 감사가 선임되는 사례도 나왔다.

◇실제 주주제안 안건 통과 사례도 늘어 = GS그룹 계열사인 삼양통상은 소액주주의 의지가 관철된 사례다. 지난 27일 열렸던 주총에서 경영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며 비상근감사 후보로 나선 소액주주 강상순씨가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아 감사에 선임된 것이다.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삼양통상 주주총회에서는 회사측이 감사 숫자를 줄이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지만 찬성 60.8%, 반대 39.2%로 부결됐다. 그리고 강씨가 소액주주들의 힘으로 감사에 선임됐다.

이같은 결과에 업계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대주주 일가 지분이 50% 이상 달하는 삼양통상의 지분 구조상 소액주주들의 제안이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날 회사 측은 소액주주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감사 1인 이상’ 두는 것으로 명시된 정관을 ‘감사 1인’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주총에 올린 것이다. 만약 이 안건이 원안대로 처리되면 소액주주가 제안한 감사 선임 안건은 주총 의안으로 다뤄지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모아진 소액주주들의 반대표 28.7%에 5.1%의 지분을 가진 조광피혁의 반대표가 더해지면서 정관 변경안이 부결됐고, 주주들이 제안한 감사선임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자동차부품 업체 부산주공 역시 주총을 통해 이종경 세무법인 신성 대표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소액주주 측 주주안건을 통과시켰다. 부산주공의 소액주주들은 기업지배구조 컨설팅업체와 협력해 30% 이상의 지분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액주주들뿐만 아니라 인포바인의 주총에서는 홍콩계 헤지펀드인 어센더캐피털(Ascender Capital)이 현 대표의 재선임안에 반대하며 제시한 감사 선임 안건이 상정되지 못하고 무산됐다.

이처럼 이번 주총시즌에는 주주제안이 그저 ‘목소리 내기’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안건 통과로 연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아직까지 주주들의 권리 찾기는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전자투표 등으로 주주 행동주의 강화될 것 = 주주제안이 통과되는 사례가 극히 일부에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초 주총에서 ‘분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던 엔씨소프트, 일동제약, 현대엘리베이터 등 대부분의 기업들이 표 대결 없이 원안대로 안건이 통과되는 모습이었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홀딩스 측은 주총 직후 소액주주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아쉽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쉰들러 측은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무리한 수권자본 확대 안건이 끝내 통과됐고, 소수 주주들의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결과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주주제안으로 주주총회에 상정된 안건이 2012년 27건에서 2013년 36건, 2014년 42건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전자투표와 전자위임장 체결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주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자투표는 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인터넷을 통해 전자투표시스템에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기존보다 주총에서 주주 참여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자투표 도입이 늘어날 경우 주주 참여도 크게 증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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