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시간이 가면서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경제혁신 3개년 개혁’이니 ‘제조업 3.0’이니 하는 중장기 정책들이 논의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인력양성 문제와 금융개혁 문제 등 그 실현을 위한 수단과 잘 연계되지 않은 채 뒤로 빠져 있었다. 반면, 재정확대와 환율 그리고 금리와 부동산 같은 단기 부양 정책들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걱정을 넘어 불안이 엄습해 온다. 정부의 강한 영향력 아래 단기 부양의 논리가 정부를 넘어 한국은행을 비롯한 주요 정책기구들에까지 퍼져 있는 것 같아서이다. 한국은행의 이번 금리 인하는 그 좋은 예이다.
금리 인하가 일정 부분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당장에 누가 돈을 빌려 갈 것인가부터 걱정이다. 큰 기업은 금리가 낮다고 해서 함부로 빌리고 함부로 투자하지 않는다. 기술과 리스크 관리 수단의 유무 등이 투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돈을 빌려 가는 쪽은 오히려 가계와 자영업자일 가능성이 크다. 당장에 너도나도 돈 빌려 치킨집에 커피집 열겠다고 덤빌까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영업자 비율이 고용인구의 26~27%로 OECD 평균 16%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다. 너무 많아 서로 죽이기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이다. 돈 빌려 집 사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줄어드는 이자소득에 차라리 부동산에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벌써 휴양지 호텔 지분 분양 등 이들을 향한 광고가 쏟아지고 있다. 집 사고 투자하고 했다가 금리가 다시 높아지고 부동산 가격이 내리면 이들은 어떻게 되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되고 있다. 그럴 가능성은 정말 없는 걸까?
금리 인하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된 한국은행이라면 정부의 단기 부양 위주의 경향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독립된 시각과 논리로 정부의 중장기 대책 등을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자영업을 줄일 수 있는 고용정책과 제대로 된 주택정책이 있는지, 또 금리 인하가 투자로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산업정책이 있는지 등을 따져서 금리든 뭐든 결정해야 한다.
독립성을 가지고 충분히 따졌을까?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젓는다. 한국은행마저 정치논리를 가진 정부에 끌려다닌 것 같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많다. 금리 인하 그 자체보다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해 그렇다.
가계부채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도 안심이 안 된다. 틀린 게 아니라 부족하다. 가처분소득의 160%로 이미 ‘폭탄’이 되어 있는 상황에 기껏 내놓은 것이 관련 기관들끼리 협의회를 구성해 잘 관리해 나간다는 것이다. 대출이나 줄였다 늘렸다 하겠다는 말인데 그걸로 어디까지 뭘 어떻게 하겠나.
이래저래 경제정책 전체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진다. 이 점과 관련해 며칠 전 있었던 경제부총리의 임금 인상 촉구 발언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경제5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 소비가 회복될 수 있도록 기업들이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었으면 했다는데,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단적으로 기업은 기업논리가 있다. 부총리가 뭐라 한다고 해서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 게다가 기업들 사정이 좋은 것만도 아니다. 이틀 전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0대 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3% 줄었다. 영업이익은 무려 15.2%나 감소했다.
경제부총리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요청을 했을까? 국민을 향한 일종의 퍼포먼스일까? 아니면 경기 부진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기 위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젠 아예 제대로 된 정책 자체가 없어서일까?
이래저래 부실해 보인다. 상호 견제 없는 구도에 질 낮은 단기 정책과 처방이 난무하고, 그 속에서 국민은 한 발, 한 발 불안한 길로 들어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