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밥 한번 사주세요’ 이벤트 610명 신청… 대상자 선정 진땀
“언제 밥 한번 먹자.”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지인을 만나 자주 하는 인사말이다. 그러나 이 인사말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나중에 봅시다’라는 인사치레를 곧이곧대로 들으면 우스갯소리로 팽(烹) 당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밥 먹듯 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는 최고경영자가 있다.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얘기다. 지난 2013년 한 회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문득 직원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자신이 부임한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따뜻한 금융’에 대한 직원들의 솔직한 평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한 회장은 ‘회장님, 밥 한번 사주세요’라는 사내 행사를 기획했다. 한 회장과 각 직급의 그룹사 직원들 간의 밥 한끼 나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된다. 그러나 직원들 입장에선 회장님과 밥 한끼 먹기가 쉽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해 3월 신한금융그룹 사내 인트라넷에는 한 회장과 밥 한끼 먹기를 원하는 직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쉴 틈 없이 올라왔다. 한 회장은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직원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응모한 사연을 모두 확인했다고 한다. 한 회장은 첫 식사자리에서 신청자 모두 회장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너무 뚜렷해 심사단이 진땀을 뺐다고 털어놨다. 총 610명의 신청자 가운데 2차례에 걸친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35명만이 한 회장과 한끼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렵게 마련된 자리인 만큼 한 회장은 그 만남에 진정성을 부여하고 싶었다. 직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도록 임원과 본부부서 직원들을 식사 자리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심지어 비서실 직원도 없이 단독으로 진행했다.
이날 한 회장의 권위의식 없는 소탈한 모습에 동석한 직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한 회장은 자칫 무겁게 흘러갈 수 있는 분위기를 부인과의 연애담으로 가볍게 반전시켰다. 한 회장은 ‘순정남’이었다. 종교 활동을 통해 만난 부인과의 연애담은 통신 수단이 흔치 않던 시절 운명 그 자체였다. 몇번이고 어긋날 수 있었던 인연을 마치 서로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처럼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결혼에 이르게 된 젊은시절 연애 이야기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날 오찬에 동석했던 한 여직원은 한 회장이 워킹맘에게 전달한 ‘엄마-일-자기개발’ 3박자론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직원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생활에서 위기를 맞게 되는데, 한 회장이 “엄마 일도 중요하지만 여성으로서의 직장에서는 지위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힘들지만 자기개발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해 당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한 회장의 경영철학인 따뜻한 금융의 탄생 비화도 이 자리에서 밝혀졌다. 한 회장이 생명 사장 시절 은행 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한 회장이 투자한 상품의 수익률이 바닥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따뜻한 금융은 거창한 어젠다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고객의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름길. 그것이 따뜻한 금융의 시작이었다.
한 회장은 직원들과 밥 한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위엄있는 최고경영자(CEO) 이미지를 벗어던졌다. 은은한 경상도 사투리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