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기관투자자에 ‘콜’오후엔 기업탐방 가거나 세미나… “인력감축으로 백화점식 담당 부담”
◇1999년 여의도에 처음 발을 디딘 15년차 애널리스트 A씨.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에 깔아둔 블룸버그앱을 통해 미국장 마감상황과 주요종목(watching list)의 주가를 확인한다. 그가 여의도 집에서 나와 10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7시.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신문을 읽고 HTS,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국내 이슈를 확인한 후 매일 오전 7시30분에 시작하는 회의를 준비한다.
리서치센터와 법인영업팀이 함께 진행하는 회의에서는 그날 내놓은 보고서를 발표한다. 3분 남짓 하는 발표이지만 그가 커버하는 종목이 요즘 사상 최고가를 연일 경신하고 있어서 법인영업팀의 질문이 이어진다.
회의가 끝나면 ‘진짜 업무’가 시작된다. 보통 애널리스트들은 아침에는 기관투자자에게 투자정보를 알려주는 ‘콜’을 하며 오전시간을 보내다. A씨는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세미나(PT)를 준비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편이다.
11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점심시간. 가끔 동료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하기도 하지만 친분이 있는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나 기자들과 점심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점심을 마치고 돌아와 장이 끝나면 기업 탐방을 가거나 본격적인 세미나를 진행한다. 지난해부터 A씨가 담당하는 섹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기관투자자들의 세미나 요청이 쏟아졌다.
1주일에 2번 정도 가는 기업탐방은 보통 장이 끝나는 3시께 출발해 4시부터 시작한다. 펀드매니저와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해당 업체의 IR담당자 혹은 CFO와 약 1시간 동안의 탐방이 진행된다.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동행한 펀드매니저와 해당 업체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다.
그가 탐방을 마치고 여의도 사무실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6시. 일반 직장인은 공식적인 업무시간이 끝나는 시간이지만 애널리스트들에게는 이제 시작인 시간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그는 보고서를 쓰기 시작한다. 기초자료를 가공하고 그래프를 작성하고 결론을 내기까지는 보통 3~4시간은 족히 걸린다. 파일 작성 등 업무가 끝나면 11시는 돼야 사무실을 나갈 수 있다.
◇A씨는 증권업계에서만 15년차 잔뼈 굵은 시니어급이지만 애널리스트로서의 고민이 많다. 1999년 여의도에 입성한 후 장이 안 좋았던 적은 있었지만 요즘처럼 애널리스트로서 위기감을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각광받던 산업이 위축되는 부침을 겪으면서 여의도 증권가에도 많은 변화가 들이닥쳤다고 말한다. 각광받던 산업의 불꽃이 사그라들면서 애널리스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 그것이 비단 그 섹터를 담당했던 애널리스트에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란 설명이다.
그는 “섹터가 비워졌는데 대체인력을 뽑지 않고 비워놓은 채 섹터를 없어지도록 놔두는 것이 현재 여의도 증권가의 현실”이라며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세분화됐던 산업을 한 애널리스트가 백화점식으로 담당하게 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해당 업종이 동시에 실적이라도 발표하면 압박이 커지고 부실한 리포트가 나오는 원인이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갈수록 어려워지는 업황에 ‘비용 부서’로 취급당하고 있는 리서치센터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민이 더해진다. 리서치센터가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 거래를 키워 비용을 커버하는 수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상황은 ‘신분의 불확실성’이라는 현실적인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위에 리서치센터를 떠나는 동료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그는 “버티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 놓는다.
A씨는 이 상황을 애널리스트의 존재의 위기라고 규정했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이 다양한 업종을 같이 커버하고 법인영업 관계자들과 세일즈에 동원되는 현실에서 애널리스트 스스로 산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담당 산업과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본질적인 시각이 흐트러지면서 리서치센터의 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