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저출산 문제, 기업이 먼저 나서라

입력 2015-02-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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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운 산업부장

“내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은 우리나라가 인구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골든타임입니다.” 6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날 논의된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 수립 방향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현재 1.19명인 출산율을 오는 2020년 1.4명까지 끌어올린다는 것. 이를 위해 현재 우리나라 출산율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인 만혼(晩婚) 문제를 해결하고 맞벌이 가구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정책 역량을 모은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생산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해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1955~1964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세대에 편입되는 2020년에는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기본계획 추진 방향을 밝혔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구체적인 방안보다는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고, 상당수는 이미 각 부처에서 시행 중인 것이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3월 과제를 정하고 지역사회 정책제안대회 등을 거쳐 9월까지 기본계획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정부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라 지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123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현재 1.19명에 불과하다. 프랑스(2.0명), 미국(1.88명)에 크게 못 미친다. EU 국가 중 가장 낮은 이탈리아(1.24명)도 한국보다 높다. 정부는 만혼을 줄인다고 하지만, 취업난으로 인해 사회에 늦게 진출하는 데다가 집값은 물론 전셋값까지 천정부지로 뛰는 사회구조에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이같은 저출산 문제는 기업에게 더 큰 문제다. 기업의 입장에서 인구가 줄어든다면 내수시장의 위축은 물론, 인력의 확보가 불투명해진다. 수출을 늘리고 해외로 생산을 전환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의 상당수는 제품을 만드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업의 특성상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원활히 이뤄져야만 기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같은 저출산 문제의 짐을 정부에게만 맡겨둬서는 안된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소임을 넘어 기업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고용자(雇庸者)가 바로 소비자인 구조에서 각 기업들의 의식전환이 일어날 경우 더 극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첫 번째로 직원들의 육아 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기업이 나서야 한다. 직장 어린이집의 확충, 결혼 지원금, 출산 장려 인센티브 등이 그 예다. 충분한 지원을 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사실 대다수의 기업들은 육아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육아가 인력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원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며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다면 경력단절이 발생하게 된다. 이제 기업 차원에서 이를 차단해 줘야 한다.

두 번째는 재직 기간의 안정화다. 만혼에다가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기간이 짧다면 출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육아지원과 근무 기간의 안정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의 기업 운영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 조사기관에 따르면, 10대 그룹 96개 상장사 퇴임 임원의 평균 나이는 54.5세, 재임 기간은 5.2년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이 이럴진데, 일반직원들의 퇴임은 이보다 훨씬 빠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개인의 경제적 수명(Economic life)이라 할 수 있는 퇴직연령이 턱없이 짧다는 것이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사회보장제도가 열악한 한국 사회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최근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한국 남성의 유효 은퇴연령은 평균 71.1세로 멕시코(72.3세)에 이어 2위였다. 여성 역시 평균 69.8세로 칠레(70.4세)에 이어 역시 2위를 차지했다. 정년퇴직 후에도 일터에서 가장 오래 일해야만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물론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볼 때 무작정 퇴직 시점을 늦출 수만은 없다. 때문에 일할 수 있는 기간은 늘려주되 단계적으로 임금을 줄이는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등의 인구 문제는 기업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사람은 똑같이 늙어가지 않는다. 각 사회도 똑같이 늙어가지 않는다.”

미국 상무부 장관을 지낸 피터 피터슨 블랙스톤그룹 공동창업자의 말이다. 예견된 시한폭탄을 피하지 못할지, 아니면 슬기롭게 해결할 것인지는 정부 못지 않게 기업의 몫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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