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90년대 편집국엔 '재떨이'가 있었다

입력 2015-01-15 16:47수정 2015-01-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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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기자

신문사 편집국만큼 분위기가 빠르게 변한 것도 드물지 않나 싶다. 기자가 언론에 발을 처음 내디딘 1990년대 초중반은 컴퓨터가 막 도입된 시기다. 원고지에 기사를 써 왔던 선배들은 당시 컴퓨터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특히 퇴근 후 술로 만신창이가 되는 날엔 두껍고 무거운 노트북을 잃어버려 회사 총무과에 기기값을 물어낸 선배도 여럿이다.

기사는 느릿느릿한 모뎀을 통해 전화선을 타고 들어왔다. 기사를 출고하지 않고 유선전화로 연락도 닿지 않는 취재기자와의 연결은 ‘삐삐’가 담당했다. 삐삐 수신 후 전화를 건 취재기자는 담당부장한테 죽어라 깨졌다. 편집국이 떠나가도록 육두문자를 날리고 전화 수화기를 던져야 상황은 종결됐다. 시커멓고 경찰 무전기 크기의 휴대전화가 지급되기까지 이런 일은 일상이었다. SNS상으로 소통해 괴괴한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한 지금의 편집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20년 전 편집국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책상엔 재떨이도 놓여 있었다. 조간 기사 마감시간인 오후 3시 무렵이면 여기저기서 거침없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 화생방 훈련장이 되곤 했다. 물론 이때도 실내금연이 원칙이던 시절이다. 손가락 끝에서 타 들어가는 담배만큼이나 육두문자가 뜨겁게 오고 갔다. 잠시 고요해지는가 하면 전화 수화기 던지는 소리와 함께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에겐 괴로운 기억이겠지만 나에겐 선배들과 만나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꽤 짜릿한 추억이다. 지금이야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요즘엔 신문사 편집국은 물론 웬만한 식당, 커피숍에서도 보기 힘든 담뱃재를 담는 그릇은 ‘재털이’일까 ‘재떨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떨이가 맞다. ‘떨이’의 기본형 ‘떨다’는 ‘달려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낸다’는 뜻의 동사다. 따라서 담배에 붙어 있는 재를 떨어 놓는 그릇은 재떨이다. 말총이나 헝겊 따위로 만들어 먼지를 없애는 물건을 뜻하는 말 역시 ‘먼지털이’가 아니라 ‘먼지떨이’라고 해야 한다. ‘먼지떠리개’나 ‘먼지털이개’도 잘못된 표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새해 들어 담뱃값이 크게 오르면서 ‘개비 담배’가 부활했다. 1980년대 담뱃값이 500원이던 시절엔 3개비를 100원에 팔았단다. 지금은 1개비에 300원. 한 갑으로 치면 6000원이지만 가난한 애연가들은 감지덕지한다. 그런데 개비 담배를 ‘까지 담배’ ‘개피 담배’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가늘게 쪼갠 나무토막이나 기름한 토막의 낱개’나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가늘고 짤막하게 쪼갠 토막을 세는 단위’는 ‘개비’만이 표준어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은 ‘개비’의 의미로 ‘가치’를 쓰는 것은 잘못이나 ‘가치담배’는 표준어로 인정한다. 언중들이 많이 쓰기 때문이란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언중을 생각했다면 ‘가치담배’보다는 차라리 ‘까치담배’를 표준어로 삼아야 했다. 잘못 쓰이는 일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신문사 편집국은 신문에 대한 열정과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기자정신으로 뜨겁다. 낱낱의 팩트(fact)를 확인한 후 퍼즐을 맞추듯 진실에 다가서는 참기자들이 그 중심에 있다. 촌지, 향응을 제공받거나 권력에 빌붙기 위해 거짓 기사를 쓴 ‘기레기’(기자+쓰레기) 부서원에게 재떨이를 던져 잘못됨을 가르친 후 거친 담배 연기를 뿜어내던 20년 전 부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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