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 뉴욕특파원
옆자리의 백인 딜러에게 쇼핑시즌 매출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는 지난해보다는 나아졌다고 했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등 이른바 대목을 맞아 대대적인 준비를 했다면서, 기자에게도 많은 혜택을 제공할 테니 이번 기회에 구매하라고 그는 재촉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현대차의 TV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쇼핑시즌 프라임 타임에는 미국 법인 차원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토요타 등 경쟁업체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광고를 집행한다.
광고는 세련된 이미지로 현대차의 첨단기술과 안전성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현지 주민들에게 관심이 높은 지역 광고 내용은 다소 다르다. 뉴욕 소재의 한 딜러십은 자체 제작한 광고를 통해 현대차가 ‘세컨카’로 훌륭하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세컨카’란 ‘메인카’를 보유한 가정이 레저생활 또는 주부가 주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구매하는 차량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구매 순위가 ‘메인카’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제값 받기’ 전략으로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들의 인식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현대차가 심상치 않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라는 미국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엔저 폭풍에도 지난해 70만대 넘게 팔아치웠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1%에 머물렀다.
시장 점유율도 부진하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에서 4%대의 점유율에 만족해야 했다. 10월에는 3%대로 점유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를 합쳐도 마찬가지다. 2011년에는 점유율이 9%에 육박했지만, 2013년 8%대 초반으로 하락했고 지난해에는 7%대로 낮아졌다.
엔저 여파를 고려하더라도, 저유가와 소비심리 회복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매가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다.
한국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가 20만대에 육박하며 3년 만에 2배로 치솟았지만, 현대차가 야심 차게 내놓은 LF쏘나타와 아슬란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출시 이후 3개월 동안 누리는 신차 효과도 크지 않았다.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고, 기존 모델과 달라진 것도 없다는 실망 때문이다.
현대차의 행보는 금융위기 이후 부활하는 미국 자동차업계와 대비된다. 미국 ‘빅3’는 포드를 제외한 2개 업체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위기를 거친 뒤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거쳐 살아났다. 성능 개선과 함께 매력적인 신차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불러들였다. 이에 힘입어 판매는 늘었고,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GM은 대규모 리콜 악재도 이겨냈다.
포드가 최근 분기 배당금을 20% 상향한 것에 대해 주주들이 환호하며 주가가 강세를 보였다는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대차 역시 주가 급락 이후 배당과 투자 확대 계획을 밝혔지만, 외국인을 중심으로 시장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한국전력 부지를 공시지가의 3배를 주고 사들인 이후, 배당을 확대해봐야 거버넌스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리한 투자를 강행한 정몽구 회장에 대한 오너 리스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라면 생각해 볼 여지는 있다. 단기적인 주주이익을 위한 무리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은 기업 가치를 갉아먹을 수도 있다. ‘빅3’와 현대차를 단순 비교하는 것에도 무리는 있다.
그러나 글로벌 ‘톱3’를 노리는 현대차가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성장 전략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특히 경영을 잘하는 기업은 주주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시장을 무시하는 기업은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가 명심해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