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경제, 50대 기업에 묻다] 사업재편 늦어지면 최악 상황 직면… 재계 위기감 고조

입력 2014-12-31 10:54수정 2015-01-02 12:45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경제 답보 68.1%·성장은 12.8% 그쳐… 재무구조 개선 계열사 ‘옥석 고르기’

2015년은 인수·합병(M&A)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대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주력사업 위주로 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단 1년이라도 사업 재편이 늦어질 경우,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증명됐다.

이 때문에 재계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방위·화학산업을 한화그룹에 넘긴 것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빅딜(Big Deal)’이었다. 올해는 이 규모를 능가할 변화가 올 것이란 게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도태될지 올 한해 가름될 것이라는 얘기다.

◇불확실성은 진행형, 내부 혁신은 한계 있어 = 이투데이가 최근 국내 20대그룹 산하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15 경제, 기업에게 묻다’라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 현 경제 시스템이 유지될 경우 한국경제는 ‘답보 상태(68.1%)’를 유지할 것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다. ‘성장궤도 진입’은 12.8%에 그쳤으며 ‘쇠락국면 진입’이 19.1%를 기록했다. 이는 50대 기업 10곳 중 9곳이 성장정체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저성장 시대에서 내부 혁신만으로 기업의 변화를 이끄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기업들이 M&A에 나서는 배경이다. 전통 제조업의 투자 방식으로는 최근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졌다는 것.

이채호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올해 국내 M&A 시장 키워드는 비주력사업의 정리와 주력사업의 확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삼성-한화와 같은 빅딜이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내년 불황형 M&A 많을 것 = 올해 M&A 전성시대가 열릴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견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3분기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61.1% 뛴 3조2437억달러(3563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다. M&A 시장의 전성기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호황형 M&A가 아닌 불황형 M&A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알짜 매물을 내놓는다. 현금 여력이 있고 신 사업을 원하는 기업은 이를 사는 방식이 지난해 M&A의 특징이었다.

KT는 렌터카 사업을 하는 KT렌탈의 매각을 진행 중이다.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현대상선의 LNG운송부문과 현대로지스틱스 등을 매각해 모두 3조3000억원(2014년 말 기준)의 현금을 마련했다. 올해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질 것이란 데 무게가 실린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추가 계열사 매각이 20대 그룹의 주요 흐름이 되면서 옥석 고르기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재계 상속문제 대두도 M&A 활성화 원인 = 국내로 시각을 좁히면 주요 그룹이 3~5세 상속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M&A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 상속세율은 누진세가 적용되며 30억원을 초과하면 50%의 세율이 적용된다. 여기에 최대주주 지분 승계의 할증이 더해지면 상속세율은 65%로 높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11개 국가는 상속세를 폐지했다. 중국은 상속세가 없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40%지만 상속인이 주식을 매각해 차익을 얻을 때 과세하는 과세이연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사실상 상속인의 부담은 없다. 이 때문에 재계는 상속세를 내기보다는 계열사 간 합병이나 외부 회사 인수를 통해 지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미 재계는 3~5세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가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 가치는 11조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자녀들이 이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5조~7조원의 현금을 내야 한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계열사 상장 등을 통해 재원 마련에 나선 것으로 재계는 해석하고 있다.

사조그룹의 경우 주진우 회장의 장남, 주지홍 사조오양 이사가 사조인터내셔널의 지분을 늘리며 3세 경영 승계에 나서고 있다. 또 대명그룹이 자녀가 소유한 회사인 기안코퍼레이션을 인수한 것도 상속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통해 박춘희 회장은 장남 서준혁 대명홀딩스 사장과 두 딸의 지분을 늘려줬다.

재계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 한국타이어 등 3세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곳도 올해 본격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중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기아차의 지분 1.75%만 소유하고 있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이 필요하다. 정 부회장은 상속이나 증여 없이 현대모비스의 지분 16.9% 이상을 소유해야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 부회장이 지분 11.7%를 가진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한라비스테온공조를 한앤컴퍼니와 공동 인수했다. 이어 현재는 KT렌탈 인수를 위한 실사에도 참여 중이다. 한국타이어가 인수에 적극 나서는 것은 신사업 개척뿐 아니라 조현범·조현식 사장의 지분 확대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은행 업계 고위 관계자는 “자식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를 다른 회사와 합병시켜 상장하거나, 자녀가 소유한 회사를 매입하는 식으로 대부분의 그룹이 상속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이 정권 밑에서 재계의 성장과 함께 상속 문제 해결을 위해 M&A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