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달라진 회식 문화
송년회로 한창 붐벼야 할 22일 저녁 10시. 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 거리는 거하게 취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호프집과 음식점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차분한 공기가 가게 안을 메우고 있었다. 한 호프집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동료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몇 명이 그를 택시에 태우고 집으로 보내자 나머지 사람들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거리는 캐럴뿐만 아니라 그 어떤 음악도 흐르지 않았다. 다만 귀가하기 전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반면 밤늦은 시간까지 커피전문점은 문전성시다. 1차로 술을 마신 증권맨들이 2차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이제 익숙한 여의도의 풍경이 되었다.
국내 증시의 장기 침체가 여의도 증권가의 연말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증권사들이 법인카드 한도를 대폭 축소하는 등 비용절감에 나서면서 과거에 비해 훨씬 차분한 분위기다. 여기에 젊은 직원들의 회식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달라 연말 회식 문화를 바꾼 것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A증권사 영업팀은 올해 송년회를 조촐하게 보냈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여의도에 위치한 삼겹살 전문점으로 예약했다. 회식 자리는 1차에서 간단히 끝내고 2차는 가지 않았다. B증권사 홍보부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회사 근처에서 식사만 하고 송년회를 마쳤다. 을지로쪽에 있는 C증권사 역시 올해 회식은 1차로 끝냈다.
A증권사 관계자는 “재작년보다 작년이 불황이고, 올해는 더 불황이라 갈수록 힘들어지는 건 사실”이라며 “환경이 계속 안 좋아지는 데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미래를 대비해 비용절감하자는 움직임이 증권업계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회식 때마다 한우집을 다녔지만 올해는 비용 때문에 일반 고깃집을 예약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최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B증권사는 회사에서 하는 공식적 송년회가 없었다. 을지로쪽에 위치한 또 다른 D증권사는 그룹 차원에서 조용한 회식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B증권사 관계자는 “회식보다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로 대부분 조용히 보내는 듯하다”며 “모든 부서에 확인하지 않았지만 간단히 점심을 같이 하면서 차분하게 송년회를 치르는 부서도 있다”고 말했다. 을지로쪽에 있는 C증권사 관계자도 “비용절감 분위기 때문에 2차는 안 가는 편이고, 젊은 직원들도 회식을 좋아하지 않아 과거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D증권사 관계자는 “회식 문화는 119라고 해서 심플한 회식문화 캠페인을 그룹 차원에서 벌이고 있어 회식 자체도 심플하게 진행하는 편이다. 연극 등 공연관람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D증권사는 사업부 회식 때 다 같이 연극 ‘옥탑방 고양이’를 관람했다. 공연장에는 의외로 단체 관람객이 많아 놀랐다는 후문이다.
E증권사 관계자는 “예전보다 회식 문화가 소프트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불황 때문일 수도 있고 회식 문화가 변한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법인카드 한도가 줄어 예전에 양주를 마셨다면 이제는 소주를 마시는 식으로 회식이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 영업을 담당하는 이 관계자는 “업무추진을 위한 법인카드가 나오고, 영업하는 사람들은 따로 법인카드가 나오지만 비용절감 차원에서 한도가 줄어든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