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세종취재본부장
그는 “공무원연금개혁을 먼저 추진했고, 국회 논의가 조속히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며 “군인과 사학연금도 그에 준하는 방식으로 개혁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국장은 당정협의가 되지 않았던 점을 의식해 “구체적 방안과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고 내부적 검토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내년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서 발표한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기재부가 배포한 경제정책 방향 참고자료에 굵은 글씨로 ‘군인(10월)·사학연금(6월)의 개혁안 마련’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이후 지난 22일 당·정 협의를 거치고 배포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 리플릿’ 자료엔 ‘공무원연금 개혁→군인·사학연금 개혁안 마련’이라고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가 돼 있었다.
하지만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한 바로 다음날인 23일 오전 11시 15분 기재부 기자실에 정은보 차관보가 들어와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했다. 정 차관보는 “정부는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편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경제정책 방향 참고자료에 담긴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편 일정은 “정부의 결정된 입장이 아니다”고 기재부가 밝혀 의문을 자아냈다.
기자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질문 공세를 펼치자 전날 저녁 여당의 반발이 쏟아진 것을 의식한 듯 정 차관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단순히 “실무진의 실수”라며 말을 아꼈다.
과연 여당이 주장한 것처럼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안이 당·정 협의 때 전혀 나오지 않았을까. 배포한 경제정책 방향 자료만 봐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사안을 여당은 금시초문이라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이다. 청와대도 경제정책 방향 발표 당일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개혁안을 만들거나 공론에 부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에 대해 여당과 청와대의 강한 반발을 의식한 듯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군인연금과 사학연금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으며 실무자들이 연금 개혁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윗선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실무진이 여론의 후폭풍이 거센, 엄밀히 말하면 내후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을 제대로 보고 없이 자료를 만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만약 여당과 청와대, 기재부 수뇌부가 주장한 대로 실무진의 일방적 발표라면 먼저 기재부 개혁부터 서둘러야 한다. 세월호 이후 관피아 척결로 이어지면서 다른 부처들의 실·국장들이 갈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동안 기재부는 오히려 부서를 확장하고 다른 부처에 실·국장들이 내려오면서 인사 숨통을 틔우고 있다. 최근 다른 부처 실·국장 인사에서도 기재부에서 내려온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어 다른 부처들의 인사 불만이 팽배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정책 방향까지 여당과 청와대, 그리고 최 부총리까지 모르는 사안을 실무진이 자료에 담았다면 지난 1997년 일본 대장성 개혁만큼 기재부 개혁도 당장 이뤄져야 한다.
당시 일본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성’을 검사대상 은행으로부터 과도한 접대를 받았다는 단순한 사건에서 개혁을 이뤄냈다.
이번 사건도 현재 여당과 청와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대장성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부로 군림하고 있는 기재부의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가 교사와 공무원, 군인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이번 사태에 대한 졸속 해명이 이뤄졌다면 더 큰 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을 하루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고 거짓으로 일관하는 여당과 청와대를 과연 어느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이번 사태의 사실 여부는 분명히 여당과 청와대, 기재부 관계자들이 알고 있다. 당장 비난 여론을 벗어나고자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고 국민에게 공감대를 얻을 부분은 얻고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표’를 떠나 개혁해야 한다.
탈무드에 이런 내용이 있다. ‘거짓말쟁이가 받는 가장 큰 벌은 그가 진실을 말했을 때도 다른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번 곱씹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