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전 새누리당 의원, UCLA 경제학박사
그런데 내년 국회와 언론의 눈과 귀를 장악해 버릴 메가톤급 블랙홀은 불과 며칠 후 대통령이 그렇게 염려하던 개헌 논의가 아닌 전혀 상상도 못하던 곳에서 터져버렸다. 헌법재판소가 발표한 선거구 획정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정이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안을 위협하는 각종 위험요소를 예측하고 대비해야 하는 청와대 정무담당이 대비는커녕 파악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새삼 새로운 일도 아니다. 개헌 문제와 달리 선거구 획정 문제는 300명의 의원이 다시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생명줄의 문제라 사생결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선거구 한 개를 인구 몇 명 기준으로 할 것인가 기준선을 다시 정해야 하는 문제부터 시작해야 하므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복잡다단한 문제라 사생결단의 싸움이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가에서 평소 말이 없고 과묵하며 점잖은 신사로 유명한 한 의원이 동료의원과 멱살잡이를 하다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선거구 획정 문제 때문이었다. 지킬 박사를 하이드로 순식간에 변신시키는 희한한 요물이 바로 선거구 획정 문제다. 그런데 이번에 헌재는 한두 곳도 아니고 전국에 수백개의 선거구를 뒤집어엎는 핵폭탄을 국회에 떨어뜨려 수백명의 하이드를 양산해 내게 되었다.
그러면 경제살리기가 우선이기 때문에 선거구 획정 문제는 국회가 다루지 말고 선관위에 일임하고 국회는 경제와 민생에 올인하는 것이 좋은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미 헌재의 판결은 엎질러 진 물로 다시 되돌릴 순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경제살리기 때문이라는 미명하에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만 하지는 말고 차제에 선거구 문제뿐 아니라 함께 연결되어 있는 선거제도까기 포함해 수십년간 누적돼 온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해소하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랫동안 누적돼 온 호남과 충청 간의 불균형 문제,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 문제, 소선거구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충분한 대표성이 빚어내는 빈약한 리더십의 문제 등등을 최대한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까지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원치 않는 메가톤급 블랙홀이 예상치 않은 곳에서 닥쳤다고 해서 회피만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차제에 누적된 적폐를 떨어내고 새로운 정치개혁을 이루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