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후계자’가 없다] 외국 금융사, 인성·자질·실무 기준 CEO 후보군 체계적 관리

입력 2014-11-0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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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후 필요성 대두… BNP파리바, 내부복수후보 경합 통한 권력이양 시장도 납득

박진회 한국씨티은행 수석부행장이 하영구 전 행장의 뒤를 이어 신임 행장으로 선임됐다. 한미은행 시절부터 14년간 한국씨티은행을 이끌어온 하 전 행장이 갑작스럽게 사퇴를 표명했지만 별다른 경영공백 없이 신임 행장 선임이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씨티그룹의 체계적 경영승계 프로그램 덕분이다.

◇외국 금융사 선진적 경영승계제도 = 박 신임 행장은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른 내부 승진자다. 씨티그룹은 임원이 될 만한 사람, 교육을 거쳐 2년 안에 임원이 될 만한 사람,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 등 세 가지로 분류, 체계적으로 행장을 길러내고 있다.

박 신임 행장은 바로 행장으로 활동할 수 있는 두 명의 후보 중 하나였다. 노조의 반발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한국씨티은행은 별다른 경영공백 없이 신임 행장 선임을 마무리했다.

실제로 외국계 금융사는 상설 조직을 통해 수년에 걸쳐 회장 승계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씨티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기업감사위원회가 1년에 한 차례 이상 CEO 후보군의 성과를 검토해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계획을 진행한다.

특히 프랑스계 금융사인 BNP파리바는 경영승계 프로그램의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지난 1993~2002년 CEO와 이사회 의장을 겸임했던 미셸 페베로가 2003년 사임하자 2명의 최고운영책임자(COO) 중 한 명인 보두앵 프로가 신임 CEO로 선임됐다. 2011년 페베로가 이사회 의장을 그만두자 그 자리를 프로가 물려받았다. 자연스러운 권력 이양이 이뤄졌고, 잡음도 일지 않았다. 시장이 납득할 만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BNP파리바는 내부 복수 후보 경쟁방식의 CEO 승계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그룹에는 2명의 COO가 있는데 이들이 차기 CEO 후보다. CEO 임기 만료 6개월 전 CEO 최종 후보자를 확정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가동한다.

외국의 경우 기관투자자와 행동주의 주주들의 경영권 승계 계획 구축 요구도 활발하다.

영국의 경우 2011년 지배구조 통합법 개정 시 기관투자자위원회(ISC)와 워커(Walker) 보고서 등은 CEO 승계 계획과 관련된 조항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미국 기관투자자협의회(CIC) 역시 이사회가 자세한 CEO 승계 계획을 승인·유지하고 그 주요 특성을 공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주요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펀드(CalPERS) 또한 적극적으로 CEO 승계 계획의 발전ㆍ실행ㆍ검토의 수행을 권고한다.

◇“승계 계획 명확·권한행사 경로 투명해야”= 외국도 처음부터 CEO 승계 프로그램이 마련됐던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당수 금융회사의 CEO가 교체되는 과정에서 명확한 승계 프로그램이 없었다. 2009년 전미 이사협회(NACD) 설문에 따르면 공식적 CEO 승계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 상장사는 43%밖에 되지 않았다.

2009년 말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가 CEO 승계 지연으로 인해 수장 선임기간 동안 주가가 크게 출렁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 국내 은행들의 사례와 비슷하다.

이에 외국에서도 체계적이고 명확한 승계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규제당국의 입장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외국 은행들은 변화를 빠르게 흡수했다.

미국의 기업 급여 및 보상 컨설팅 회사인 펄메이어&파트너스가 2011년 39개 은행을 대상으로 CEO 승계 절차에 관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급 계획을 갖고 있는 응답자가 31.4%(복수)로 나타났다. 또 중기(4~6년)계획은 57.1%, 가까운 장래(1~3년) 28.6%, 장기(7~10년) 22.9%로 각각 집계됐다. 10년 이상의 계획을 갖고 있다는 응답도 5.7%나 됐다.

승계 계획이 이사회나 위원회에 의해 검토되는 빈도는 필요에 의할 때가 41.2%, 매년 44.1%, 일년에 2~3번 11.8%로 각각 집계됐다.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9%밖에 되지 않았다.

잠재적 CEO의 승계자 개발방식은 리더십 역할 부여(93.9%)가 압도적이었다. 이사회에의 노출 증대(9..9%), 대중에의 노출 증대(36.4%)가 그 뒤를 이었다. 이 밖에 경영자 수업(27.3%), 직무순환(15.2%), 이사회 구성원의 멘토 역할(6.1%) 등도 활용되고 있었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지배구조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CEO 승계 관련 계획을 명확히 수립하고, CEO의 권한 행사 경로를 투명하게 바꿔야 한다”며 “소극적으로 그치고 있는 일반 주주의 역할과 이사회 기능의 실효성 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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