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죽음’을 표현하는 말…시대·계층·종교 따라 달라

입력 2014-10-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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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교열기자

“나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많은 분노를 느꼈다. 국가의 틀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동방신기와 비의 노래를 유해 매체로 지정할 것이 아니라 국회 자체를 유해 장소로 지정하고 뉴스를 차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국회 역시 19금이다.”….

가수 신해철은 필요하다면 독설도 거침없이 쏟아냈다. 타협하거나 돌아갈 줄 몰랐고 언제나 곧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소위 ‘듣보잡’ 국회의원보다 더 자주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회문제에 일침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고 화제를 낳았다. 그가 비정치인으로서 가장 인기 있는 논객이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으리라. ‘마왕’, ‘교주’라 불릴 만큼 강렬하고 독보적 카리스마를 지녔던 그. 신해철이 푸른 가을날 떠났다. 꿈을 찾아 방황하던 20대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의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싱어송라이터 신해철의 노래에는 삶의 고뇌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나고 수많은 희로애락을 겪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인간사 가장 원초적 문제가 바로 삶과 죽음이듯 죽음을 뜻하는 말도 다양하다. ‘죽다, 숨지다, 세상을 뜨다, 삶(생)을 마감하다, 돌아가(시)다’ 등 직접적으로 죽음을 나타내는 말에서부터 완곡한 표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다. 어디 이뿐인가. 사망, 타계, 별세, 서거, 사거, 운명(殞命), 작고, 영면, 붕어, 승하 등 한자어도 손에 꼽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 말들은 상황에 따라 쓰임에 차이가 있다. 명망 있는 인사가 사망했을 경우 서거, 타계, 별세 등으로 표현한다. 대통령 등 국가수반이나 민족지도자 같은 인물이 사망했을 때는 서거, 귀인(貴人)의 경우엔 인간 세상을 떠나서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의 타계를 쓴다. 과거 임금 등 존귀한 사람이 죽었을 때는 승하, 붕어라 표현했다.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유교문화의 잔재다. 특히 붕어는 권위주의적 표현으로 요즘에는 거의 쓸 일이 없다. 다만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란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픔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종교에 따라서도 죽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는 승려가 사망하면 입적(入寂), 열반(涅槃), 입멸(入滅)이라는 표현을 쓴다. ‘선종(善終)’은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로, ‘사람이 죽는 것’을 뜻하는 가톨릭의 공식 표현이다. 개신교에선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는 뜻의 ‘소천(召天)’을 쓴다. 그런데 이 말은 사전에도 없을뿐더러 정상적인 조어도 아니다. ‘召天’은 ‘하늘을 부름’이란 뜻이지 ‘하늘의 부름’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상 ‘天召’라고 해야 맞다.

세상에는 자식으로 인해 새까맣게 타 버린 가슴을 움켜쥐고 피눈물을 쏟는 부모가 수백, 수천일 것이다. 그중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일이 최고의 고통일 터. 부모는 죽은 자식을 가슴속 깊이 묻는다. 이처럼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사망했을 경우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신해철 사망 소식을 접한 후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들었다. 빠른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진‘마왕’은 뭔가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마왕이 떠난 가을날의 바람이 스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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