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장에도 채용 정체⋯대기업 진입 경로 좁아져

청년층의 취업난이 단순한 일자리 부족을 넘어 고용의 질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 채용이 정체되면서 청년들이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눈높이를 낮추고 있지만, 이후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기회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과 AI 확산, 경직적인 노동시장이 맞물리면서 청년고용 부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동향팀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 ‘청년고용 부진 및 정책 과제’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2022년 46.6%에서 올해(1~9월) 43.7%로 2.9%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6.4%에서 6.6%로 상승했다.
다만 최근 청년고용은 과거 부진기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14~2019년 청년 실업률은 평균 9.4%에 달했지만 2023~2026년에는 6.1%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평균 고용률은 42.0%에서 45.4%로 높아졌다. 실업률 등 양적 지표보다 일자리의 질이 악화한 점이 특징이다.
실제 팬데믹 이후 청년 취업자 중 임시·일용직 비중은 증가세를 나타냈다. 비자발적으로 시간제 근로를 선택한 청년도 늘어난 반면, 30~59세 핵심연령층에서는 상용직 비중이 확대되는 등 고용 여건이 엇갈렸다.
황수빈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동향팀 과장은 “최근에는 취업 눈높이가 낮아진 청년층이 2차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면서 고용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대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취업을 미뤘다면 최근에는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눈높이를 낮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고용 부진은 경기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이 과거 경기지표와 청년고용률 간 관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23년 이후 실제 청년고용률은 경기 여건을 감안한 예측치보다 연평균 약 0.6%p 낮았다. 산업구조 변화 등 비경기적 요인이 고용을 추가로 위축시켰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이 지목됐다. 최근 경제성장은 IT 제조업이 주도하고 있지만 생산 증가가 상용직 신규 채용 확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고용 창출 비중이 높은 비IT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도 생산 부진과 함께 채용이 감소했다.
AI 확산도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기초 업무를 수행하는 신입직원보다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경력직을 선호하면서 초급 일자리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다. 특히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일수록 청년고용 감소폭이 크게 나타났다.

문제는 취업 이후에도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이 청년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상용직 등 1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의 동일 일자리 유지 비율은 상승했다. 반면 미취업자의 신규 진입이나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노동시장으로 옮겨가는 비율은 하락했다.
이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청년고용 부진을 장기화할 위험이 있다.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서 경력을 시작한 청년들이 충분한 직무 역량을 쌓지 못하면 향후 채용수요가 회복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로 이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황 과장은 “청년고용 문제에는 산업구조 재편, AI 기술 변화, 경직적 노동시장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노동공급 측면의 대책인 일자리 정책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에 한계가 있다.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병행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