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라벨 규정 변경에 포장재 폐기 반복
보호복 중복 착용에 장비 호환 문제까지

정부 부처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거나 현장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규제가 기업과 국민의 불편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수입 주류는 잦은 표시 기준 변경으로 포장재를 다시 제작해야 하고, 제철소 근로자는 서로 다른 안전 규정에 따라 보호복을 겹쳐 입어야 하는 실정이다. 공항 구급대가 응급환자를 발견하고도 병원으로 직접 이송하지 못하는 문제도 개선 대상으로 지목됐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기업 현장에서 수집한 규제 개선과제 129건을 민관합동 규제합리화추진단에 전달했다. 이번 건의에는 여러 부처의 규정이 충돌하거나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사례가 포함됐다. 대한상의는 현장 여건을 고려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식음료 제품의 라벨 표시 기준이다. 제품명과 원재료는 식약처, 원산지는 농식품부와 관세청, 분리배출 표시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담당한다. 주류는 용도와 청소년 판매금지, 건강경고 관련 규정까지 적용된다. 수입 주류 업체가 따라야 하는 소관 부처는 최대 9곳에 이른다.
문제는 각 기관이 규정을 바꾸는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주류 라벨 관련 기준은 2020년 이후 10여 차례 개정됐다. 업체들은 변경 때마다 기존 포장재를 버리고 새 제품을 제작해야 했다. 정부가 2017년 마련한 1년 이상의 준비 기간 원칙도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생했다.
특히 유럽에서 선박으로 주류를 운송하는 데 약 4개월이 소요되지만, 개정 규정이 6개월 만에 시행되기도 한다. 대한상의는 부처 간 사전 협의를 통해 변경 일정을 맞추도록 요청했다. 위스키와 와인 등 소비기한이 없는 제품은 기존 물량이 소진될 때까지 종전 라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산업 현장의 안전장비 규정도 개선 대상으로 올랐다. 고소작업에 사용하는 안전대와 안전블록은 세트로 인증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제조사가 다른 제품은 연결 규격이 맞더라도 함께 사용할 수 없다. 원청업체가 바뀔 때마다 협력업체가 평균 8만원인 안전대를 새로 구매해야 하는 구조다.

제철소에서는 보호복 착용 기준이 충돌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부생가스에 일산화탄소가 25% 이상 포함돼 화학물질용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하지만, 고열 작업에 필요한 방열복도 별도로 요구된다. 어느 규정을 우선 적용할지 정해지지 않아 근로자가 두 종류의 보호복을 함께 입어야 한다. 대한상의는 작업 환경에 따라 착용 기준을 조정하도록 건의했다.
공항 응급환자 이송 체계에 대한 개선 요구도 나왔다. 현행 지침상 공항 구급대는 외부 병원으로 환자를 직접 옮길 수 없어 119 구급대를 기다려야 한다. 실제 한 공항 화물청사 사고에서는 자체 구급대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외부 구급대에 환자를 인계하기까지 30분이 걸렸다. 대한상의는 인근 지정병원 이송을 허용하거나 심장·뇌혈관계 응급환자부터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대한상의가 올해 4월 제출한 과제 중 고압가스 저장시설 문 설치기준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이격거리 공통기준 등 10건은 개선으로 이어졌다. 해당 성과는 8월 국무총리 주재 간담회에서 발표됐다. 대한상의는 규제합리화추진단과 협력해 추가 제도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