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인지 여부보다 ‘통제체계 허점’ 주목⋯15년간 못 걸러
직무분리 미흡·명령휴가 미실시⋯경영진 회계관리 중과실 인정

3000억원 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한 경남은행의 전 경영진이 회계처리기준 위반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 횡령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사고를 걸러내지 못한 내부통제 부실과 재무제표 왜곡을 이유로 금융당국의 제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7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홍영 전 경남은행장과 고영준 전 재무담당임원(CFO)은 최근 금융위원회·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횡령 사고와 관련해 최 전 행장에게 총 2억2480만원, 고 전 CFO에게 2억2200만원의 과징금을 각각 부과했다.
사건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업무를 담당하던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 이모 씨가 약 15년간 총 3089억원을 횡령하면서 불거졌다. 이 씨는 자금인출요청서 등을 위조해 허위 대출을 실행하거나 차주가 갚은 원리금을 상환 처리하지 않고 빼돌렸다. 횡령이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자기자본 등이 과대계상됐다.
경영진 측은 2023년에야 횡령 사실을 알게 된 만큼 재무제표 작성과 관련해 고의나 중과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횡령 인지 여부보다 이를 예방·적발할 통제체계의 허점에 주목했다.
판결문을 보면 이 씨는 15년간 같은 부서에서 대출 업무를 맡고 자신이 취급한 대출의 사후관리까지 수행했다. 직무분리가 미흡했고 위험업무 담당자에 대한 명령휴가도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출금 지급 통제와 상환 업무 절차가 미비했으며, 대출 실행·상환 내용에 대한 차주 통지도 없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통제 공백으로 횡령을 막거나 적발하지 못해 왜곡된 재무제표가 작성·공시됐다고 봤다. 경영진의 근무 경력과 담당 업무 등을 고려하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관련 위험과 회계정보 오류 가능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중대한 과실 또는 현저한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최 전 행장은 이 씨를 다른 부서로 전보하고 대출 사후관리 점검을 지시했다는 점도 내세웠다. 다만 재판부는 전보가 위험관리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볼 자료가 없고, 점검 역시 부실채권 관리 차원으로 보일 뿐 내부 부정행위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볼 자료는 없다고 판단했다.
내부통제 위반과 회계 책임은 별개라는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영진은 사고 예방 체계가 미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중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회계정보 오류를 바로잡고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일 역시 내부회계관리제도에 포함된다며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이 재무제표 작성·공시 책임자로서 공시서류 확인서에 서명했다는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임 기간 발생한 손실 범위에서만 제재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선 처분 사유가 재무제표의 회계처리기준 위반과 경영진의 중과실인 만큼 손실 발생 시점과는 무관하다고 봤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횡령을 몰랐다는 해명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를 발견해 재무제표에 정확히 반영할 통제체계를 갖췄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라며 “경영진의 책임이 직접 가담 여부뿐 아니라 회계관리의 실효성에도 있다는 경고다. 각자의 권한과 재임 기간에 실질적인 통제를 수행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은 판결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 제6부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경남은행 측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별도로 언급할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재판에 넘겨진 이 씨는 지난해 징역 35년을 확정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