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베어허그가 던진 불편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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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주가가 1만원인데 누군가 주당 1만5000원에 회사를 사겠다고 제안한다면 이사회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주주 입장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시장 가격보다 50%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 기회를 왜 막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른바 ‘베어허그’가 한국 자본시장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다.

베어허그는 인수자가 현 주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이사회가 쉽게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전략이다. 곰이 상대를 꽉 끌어안듯, 높은 인수가격으로 경영진을 압박한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국회에는 최근 이 같은 인수 제안을 주주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개정안은 기업이 중대한 인수 제안을 받으면 이를 공시하고, 공개매수가 들어올 경우 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을 거쳐 의견을 밝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경영진이나 대주주가 인수 제안을 받아도 일반주주가 그 사실조차 알기 어려웠다. 법안이 통과되면 인수 제안은 경영권을 가진 사람들만의 협상 테이블에 머물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더 불편한 질문이 시작된다.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거절하며 “우리 회사는 그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고 주장한다면 주주들은 다시 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현재 주가는 인수 제안 가격보다 훨씬 낮은가.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회사가 저평가됐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충분히 했는가.

DS투자증권은 베어허그 관련 보고서에서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핵심 명분으로 가격을 꼽았다. 제안 가격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면 거절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주주환원 확대나 자산 매각, 비핵심 사업 정리 등 스스로 평가한 적정가치를 시장에서 증명할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숙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다 알리멘타시옹 쿠시타르의 인수 제안을 기업가치를 과소평가했다는 이유로 거절한 뒤 최고경영자 교체와 슈퍼마켓 사업 매각, 대규모 자사주 매입 등 구조개편에 나섰다. 실제 인수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인수 제안 자체가 경영진에 기업가치 제고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낮은 주가가 대주주에겐 불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분 증여나 승계 과정에서는 주가가 낮을수록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장의 저평가를 적극적으로 해소해야 할 유인이 일반주주와 대주주 사이에서 항상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웠던 이유다. 하지만 베어허그가 활성화되면 상황은 뒤집힌다. 오랫동안 방치한 낮은 주가는 외부 인수자에게는 더 적은 비용으로 높은 프리미엄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물론 베어허그가 만능 해법은 아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자본이 경영권을 흔들거나 장기 투자가 필요한 기업이 과도한 주주환원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대주주 지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기업이라면 인수 제안이 공개돼도 실제 경영권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경영권 안정과 장기 투자 역시 기업가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베어허그 법안이 던지는 질문은 피해가기 어렵다. 회사가 제값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면 시장에서 그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제안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다면 거절한 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증명하면 된다. 확실한 경영권 방어는 주주가 굳이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팔 이유가 없을 만큼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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