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숫자로 재단한 새벽배송 규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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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기사의 건강을 지키겠다며 야간근로에 법정 상한을 두는 법안이 나왔다. 하루 10시간, 주 48시간 이내로 일하고 야간근무는 연속 3일, 월 12회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근무를 마친 뒤 11시간 연속 휴식도 보장한다. 택배기사만이 아니라 야간에 일하는 근로자 전반이 대상이다.

취지는 부인하기 어렵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과 고강도 배송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소비자의 문 앞에 아침 식탁이 도착하기까지 누군가는 잠을 포기하고 밤길을 달린다. 다만 좋은 취지가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정작 보호 대상인 기사들의 반응이다.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배송기사 3319명을 조사한 결과 98%가 야간근무를 월 12회로 제한하는 방안에 반대했다. 특정 단체의 조사라는 한계를 감안해도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법에 당사자의 압도적 다수가 등을 돌리는 장면은 법안 설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유는 단순하다. 일한 날과 배송한 물량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기사들에게 근무일 축소는 곧 소득 감소다. 실제 이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7%가 작업시간이 제한되면 소득이 줄 것이라 답했고 소득이 줄면 49%는 다른 일을 병행하고 51%는 아예 택배업을 떠나겠다고 했다. 한밤의 노동을 막았더니 더 열악한 밤일로 내몰리거나 생계 자체가 흔들리는 역설이다. 월급 근로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휴식의 확대가 될 수 있지만 건당 수수료로 사는 기사에게 근무 횟수 제한은 곧 수입의 감소다. 법안은 밤일의 횟수는 제한했지만 그 횟수가 곧 생계라는 현실은 놓쳤다.

숫자로 위험을 재단하는 방식 자체도 허술하다. 하루 4시간씩 13일 일한 사람은 제한에 걸리고 하루 10시간씩 12일 일한 사람은 허용된다. 같은 12회라도 배송 물량과 휴식 시간에 따라 몸이 받는 부담은 전혀 다르다. 기사마다 나이와 건강 상태, 배송 구역과 물량이 다르고 병원과 공장, 운송과 경비처럼 업종마다 야간근로의 이유와 방식도 다르다. 이렇게 다른 현장에 '월 12회'라는 하나의 잣대를 들이댄다고 같은 수준의 보호가 이뤄질 리 없다. 법의 숫자는 선명하지만 그 숫자 밖의 삶은 훨씬 복잡하다.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근무일이 줄면 허용된 날에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하게 되고 여러 업체를 오가며 밤일을 이어갈 가능성도 커진다. 한 사업장에서 일한 횟수는 줄어도 전체 노동시간과 피로도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늘 수 있다는 뜻이다. 배송 현장에서는 기존 물량을 처리하려면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배송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번질 수 있다. 건강 위험은 줄이지 못한 채 일자리와 비용만 옮겨놓는다면 이 정책은 이미 목적을 잃은 것이다.

더 주목할 점은 기사들이 건강권 보호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조사에서 기사들이 가장 많이 꼽은 보호책은 자유로운 휴무(65%)였다. 주 5일 업무제(58%)와 건강검진비 지원(56%)이 뒤를 이었다. 작업시간 제한을 택한 응답은 3%뿐이었다. 이들이 거부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날부터 잘라내는 방식이다.

법안에 담긴 11시간 연속 휴식과 연속 야간근무 제한은 논의할 수 있다. 실제 피로를 직접 줄이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획일적인 횟수 상한은 노동 강도나 건강 상태를 따지지 않고 일할 기회부터 제한한다. 건강 위험을 줄이는 일과 근무일을 줄이는 일은 같지 않다.

입법자는 현장이 반대하는 숫자를 왜 법에 새겨야 하는지 답해야 한다. 지금까지 제시된 것은 건강권이라는 명분뿐 획일적 제한이 건강을 지킨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노동자를 위한다며 노동자의 일과 소득부터 줄이는 법이라면 '보호'라는 이름부터 떼야 한다. 선의는 현장을 외면한 입법의 면허가 아니다. 지금은 법을 밀어붙일 때가 아니라 현장의 답부터 다시 들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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