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칼라에 150억…부산 문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공연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라 스칼라를 데려오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150억원 안팎의 공공재원을 투입해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져온 뒤 부산이 무엇을 얻을 것인가가 핵심이다.
특히 그동안 부산의 클래식 정책이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이라는 ‘거장’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다는 점에서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명훈이라는 이름은 부산의 문화적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강력한 자산이다. 세계적인 음악가와 라 스칼라라는 세계적 공연장을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출발점으로 활용하는 전략 자체가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부산이 정명훈을 활용하는 것인지, 정명훈이 부산 문화정책의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는 것인지다.
24일 열린 부산오페라하우스 관련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문제의식이 제기됐다.
문화계에서는 “마에스트로에 대한 존중과 부산시의 문화정책은 별개의 문제”라며 “정명훈이라는 거장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부산시가 특정 인물의 구상이나 세계적 공연장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라 스칼라 개관공연이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관행사’가 아니라 ‘라 스칼라와 정명훈을 위한 부산의 행사’로 비쳐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날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라 스칼라와 부산시의 계약 진행 상황이다.
그동안 부산시가 비밀유지계약(NDA)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조유장 부산시 문화국장은 이날 “NDA 조항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계약 협의를 하기 위해 협의가 멈춰져 있는 상황”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계약이 이미 확정돼 시민들에게 통보하는 단계가 아니라면, 부산시는 왜 라 스칼라인지, 왜 150억원인지, 그 돈으로 부산이 무엇을 얻는지를 시민들에게 먼저 설명할 수 있다.
더구나 부산시는 라 스칼라 공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시민토론회와 대시민 의견조사, 문화협력위원회, 타운홀미팅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숙의의 내용이다.
단순히 “라 스칼라 공연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묻는 방식이라면 숙의라고 하기 어렵다.
150억원을 투입할 경우 부산에 돌아올 문화적·경제적 효과가 무엇인지, 그 효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부터 시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라 스칼라 개관공연을 둘러싼 가장 큰 질문도 여기에 있다.
150억원을 세계적인 공연 한 편에 투입하는 것과 같은 돈을 5년 동안 지역 오페라 생태계에 투입하는 것은 정책 효과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단기간에 부산의 도시브랜드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후자는 지역 예술인과 오페라단, 공연기획사, 제작인력 등 부산의 문화산업 기반을 키울 수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니다.
부산시가 두 정책의 효과를 제대로 비교하고 선택했느냐가 문제다.
세계적인 공연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부산의 문화생태계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라 스칼라와 공동제작을 한다면 부산 예술인과 제작진은 얼마나 참여하는지, 부산의 공연기획사와 문화기업에는 어떤 기회가 돌아가는지, 부산에서 만든 작품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지, 라 스칼라와의 협력이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교류로 이어지는지 등을 계약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150억원이 ‘공연을 사는 돈’이 아니라 ‘부산 문화산업에 투자하는 돈’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부산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불러오는 데 거액을 지출하고, 공연이 끝난 뒤에는 다시 처음부터 문화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명훈 감독과의 관계 역시 부산시가 풀어야 할 숙제다.
라 스칼라 공연이 무산될 경우 정 감독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 국장은 “대안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 답변은 의미가 적지 않다. 부산시가 정명훈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아직 라 스칼라 공연이 무산될 경우의 구체적인 대안까지 마련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을 부산의 문화적 앵커로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앵커가 부산 문화정책의 방향을 묶어버리는 ‘닻’이 돼서는 안 된다.
부산이 얻어야 할 것은 ‘라 스칼라’가 아니다
박형준 전 부산시장 시절부터 부산시는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를 활용한 도시마케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를 비롯한 대형 문화 인프라 역시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를 유치해 부산의 도시브랜드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세계적인 문화예술인이 부산을 찾고 세계적인 공연장이 부산과 연결되는 것 자체가 도시의 자산이 될 수 있다. 도시 브랜딩에 일부 도움이 된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부산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세계적인 이름을 부산에 가져오는 데서 끝낼 것인지, 그 이름을 부산의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라 스칼라의 명성이 부산에서 소비되고 정명훈의 브랜드 가치만 높아진다면 시민 입장에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부산에 무엇이 남는가.”
반대로 부산 예술인과 제작인력이 세계적인 무대와 연결되고, 지역 오페라단이 공동제작에 참여하며, 부산의 창작물이 해외로 진출하고,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자체 제작 역량을 갖추는 계기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라 스칼라는 부산의 문화정책을 위한 수단이 된다.
결국 이번 논란에서 부산시가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라 스칼라의 이름값이 아니다.
150억원을 투입하고 부산이 무엇을 회수할 것인지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을 존중하면서도 부산시가 문화정책의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 세계적인 공연장을 활용하면서도 지역 문화생태계에 성과를 돌려주는 것.
부산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가 시험하는 것은 어쩌면 공연 자체가 아니다.
‘세계적인 문화도시 부산’을 말할 자격을 부산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