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및 수사 권한 강화
선명한 감독 철학 및 판단력 필요성 아쉬움도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금융 경력이 없는 법조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취임 당시 전문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지난 1년 금융소비자 보호를 감독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며 비교적 뚜렷한 색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년 차에는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과 가계부채·건전성 관리 등을 둘러싼 정책 목표 사이에서 균형 잡힌 감독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금융감독원은 이 원장 취임 후 1년의 핵심 성과로 소비자 최우선 감독 체계 구축을 가장 먼저 꼽았다. 소비자보호 체계를 사후 구제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환하고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수사 권한을 강화한 것이 핵심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금융소비자보호 개선 로드맵을 마련한 데 이어 올해 1월 조직개편을 통해 원장 직속에 소비자보호총괄 부문을 배치했다. 3월에는 금융소비자보호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켜 7월까지 세 차례 회의에서 32개 안건을 논의했다.
금융회사에도 소비자보호 책임을 강화하도록 했다. 이사회와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소비자보호부서의 역할을 구체화한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규준’을 마련했다. 금융상품의 설계·제조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 전 단계에서 제조사와 판매사의 책임을 높이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자 피해가 확산할 우려가 있을 경우 판매 제한 등을 통해 조기에 차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분쟁조정위원회를 매월 정례화하고 소비자 전문가 비중을 기존 18%에서 33%로 확대하며 소비자 피해 구제 역시 강화했다.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조사·수사 역량 강화도 이 원장의 성과로 꼽힌다. 금감원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은 4월 인지수사권을 확보한 뒤 행정조사 단계의 중대 사건을 곧바로 강제수사로 전환할 수 있게 됐다. 6월 미공개정보 이용과 선행매매 사건 2건을 인지수사로 전환해 7월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도 지난해 7월 36명에서 올해 6월 말 90명으로 확대됐다.
불법사금융·보이스피싱 등 민생금융범죄 대응에서도 감독의 범위를 넓혔다. 신종피싱과 대포계좌를 탐지하기 위한 금융권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을 고도화하고 범죄 의심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를 확대하고 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에 대해 금감원장 명의의 무효확인서를 발급하며, 직접 단속을 위한 민생 분야 특별사법경찰 도입도 추진 중이다.
내부에서는 이 원장의 조직관리와 소통 방식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업무 강도를 비교적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율하는 한편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스타일이라는 분위기다. 취임 후 금융권 CEO 간담회와 지역 금융기관 방문 등 금융업권과 36차례, 유관기관·현장과 34차례 소통하는 등 총 83차례의 대외 소통 행보를 이어갔다.
다만, 2년차에는 이 원장 개인의 감독 철학과 판단력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금융정책 전반에서 정부 주도의 현장 점검과 정책 집행이 강화되고 있다. 금감원은 정부 기조에 빠르게 보조를 맞추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 전문성에 대한 취임 초기의 물음표를 완전히 지웠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주요 현안에서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독자적인 판단과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향후 평가를 좌우할 전망이다.
특히 금융지주와 은행의 지배구조 개선은 2년 차 주요 시험대로 꼽힌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선임과 승계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가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금융지주 회장 연임 구조에 대해 직접 ‘부패한 이너서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은행 감독에서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동시에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미래산업 지원 등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의 연체와 부실여신 관리 부담이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면서 기업 자금 공급은 늘리고, 동시에 금융회사의 건전성까지 지켜야 하는 상충된 목표를 조율해야 하는 것.
금융의 디지털화와 AI 확산에 따른 새로운 위험 관리도 과제다. 금감원은 금융보안 통합관제시스템 ‘FIRST’를 가동하고 AI 위험관리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등 IT 감독체계를 사전예방 중심으로 바꿨다. 금융회사의 AI 거버넌스 구축과 IT 내부통제 강화까지 감독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금감원은 스스로 이 원장의 1년을 “금융감독의 패러다임을 사후구제에서 사전예방으로 전환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기 위한 기반을 조성한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남은 임기에는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고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소비자·투자자 보호와 금융산업의 성장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