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과 다르다…AI·라부부로 큰 ‘은둔형 억만장자’들 [중국 富의 세대교체 ①]

40세 이하 자수성가 억만장자 29명…美 이어 中 2위
부동산·관시 대신 AI·게임·소비재로 글로벌 시장 공략
당국 규제·미중 갈등에 대외 노출 꺼리며 ‘몸 낮추기’

중국에 새로운 억만장자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성장했던 과거 기업가들과 달리 이들은 AI·미디어·소비재·엔터테인먼트 등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 이를 전 세계로 빠르게 확장했다. 동시에 당국의 규제와 미·중 갈등을 의식해 대외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은둔형 글로벌 기업가’라는 새로운 특징도 보인다.

9일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후룬연구소의 ‘2026 글로벌 40세 이하 자수성가 억만장자’ 순위에서 올해 1월 기준 글로벌 40세 이하 자수성가 억만장자는 108명으로, 미국(50명)에 이어 중국(29명)이 2위를 기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후룬 부자 순위에 오른 신세대 거부들 3분의 2 이상은 소비재나 미디어 분야에서 재산을 축적했다”며 “일례로 7명은 게임을 개발했고 4명은 차(茶)·커피 브랜드를 창업했다. 3명은 AI로 부를 거머쥐었다”고 전했다.

중국의 40세 이하 자수성가 억만장자 가운데 가장 부유한 이는 팝마트의 왕닝(39) 창업자가 꼽혔다. 괴기스러운 외모의 ‘라부부’ 캐릭터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팝마트는 차세대 글로벌 소비재 브랜드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문샷AI의 창업자 양즈린, SNS용 카메라 브랜드 인스타360의 류징캉과 거대언어모델(LLM) 플랫폼 미니맥스의 옌쥔제 등도 주목을 받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새로운 거부들은 이전 세대와 뚜렷하게 다르다”면서 “이들은 부동산 투기와 관료들과의 술자리 등 ‘관시’ 구축 대신 비디오게임과 일본 애니메이션 모임을 즐긴다. 동시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글로벌 사업으로 이전 어느 세대보다 빠르게 확장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초부유층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80년대 개혁·개방이 본격화하면서 국유기업의 시장화와 민간 경제 확대 과정에서 1세대 기업가들이 등장했다. 마오쩌둥 시대 학생 홍위병 조직에서 활동했던 장루이민은 국영 냉장고 제조업체 하이얼을 맡아 세계적인 가전업체로 키워냈다.

1990년대에는 부동산 시장이 개방되면서 현재는 파산한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에버그란데)의 쉬자인이 부호 대열에 합류했다. 2000년대 초에는 원래 배터리 제조업체였던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의 왕촨푸 같은 산업가들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제조업 기업들의 물결을 일으켰다.

2010년대에는 인터넷 산업이 중국 최초의 IT 재벌들을 탄생시켰다.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마윈과 위챗 개발사 텐센트의 마화텅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뒤를 잇는 40대 억만장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현재 40대 초반인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의 장이밍 창업자와 온라인 패스트패션 기업 쉬인의 쉬양톈 창업자가 대표적이다. 올해로 41세가 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량원펑 회장은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와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를 크게 따돌리며 AI 모델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창업자 가운데 가장 부유한 인물로 여겨진다.

중국 젊은 억만장자들에게 모든 것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정부와 최고 부자들 사이의 관계가 악화돼 왔기 때문이다. 기성 재벌들은 자신들을 국가 건설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여겼다. 한때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4분의 1을 차지했던 부동산 산업은 민간 기업가와 지방정부 관리들이 함께 만들어낸 협력의 산물이었다. 또 마윈은 중국 디지털 경제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공동부유’라는 명분으로 이러한 분야의 대표적 기업인들을 잇달아 제재하면서 타격을 가했다. 현재 마윈의 자산은 2020년 정점에서 크게 감소했으며 다른 인터넷 기업 거물들도 규제 강화 직격탄을 맞았다. 심지어 부동산 업계에서는 여러 기업인이 당국에 구금되기도 했다. 이러한 환경은 중국의 젊은 억만장자들 사이에 환멸감을 키우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중국 젊은 부호들의 글로벌 야망은 미·중 관계 악화라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중국 AI 기업인 마누스의 샤오훙(33) 설립자는 중국 정부가 회사를 미국 빅테크 메타에 매각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면 올해 초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알렸다.

후룬의 창립자인 루퍼트 후게베르프는 “이들 혁신 기업가들은 중국이나 미국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자신들이 일군 사업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면서 “이에 중국의 젊은 억만장자 대부분은 언론과 거의 인터뷰한 적이 없는 등 대중의 관심을 피한다”고 풀이했다. 이어 “그 결과 중국은 역대 가장 글로벌한 동시에 가장 베일에 싸인 기업가 세대를 갖게 됐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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