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펜션 3.7년, 카페 3.1년, 실내스크린골프점 3.7년, 통신판매업 2.7년.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업종들의 평균 수명이다. 골목상권 사장님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문을 처음 열고 폐업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수천, 수억원의 영끌 창업으로 정성껏 가게를 꾸려 물건을 들이고 메뉴를 짜 손님을 맞지만 남는 건 텅 빈 가게와 빚뿐이다.
2024년 100만개의 사업체가 폐업했다. 지난해엔 이보다 3만개 적은 97만개의 업체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 누구도 100만이라는 거대한 숫자 안에 내가 포함될 것이라는 우울한 상상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자영업의 생명력이 이토록 짧은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국은 수출 중심 국가로 내수 기반은 이보다 취약하다. 반도체 등 일부 첨단산업이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을 때 내수 시장의 전통적인 자영업은 저성장과 양극화 심화로 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한다. 여기다 코로나19를 거친 뒤 심각한 내수 부진이 이어졌고, 연이은 전쟁들로 환율과 유가는 요동쳤다. 불안한 공급망에 원자잿값이 고공행진하면서 물가는 치솟았고, 기후변화에 원재료 가격은 급등했다. 인건비도 뛰었다. 배달앱 수수료도 마진을 끌어내린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도 폐업을 앞당긴다. 소상공인들은 약 13개월(2024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기준) 창업을 준비한다. 또다른 통계에선 자영업 준비 기간이 7개월에 불과하다. 가게 문을 여는 데엔 평균 83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인상적인 건 각양각색의 창업 사연이다. 큰돈을 벌겠다며 적극 창업에 나서는 이들도 있지만 조직 생활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에 자영업을 도피처 삼는 이들도 있다. 주변의 권유로 옷가게를 열고, 지인의 레시피 전수로 음식점을 연다. 50대에 노동시장에서 나와 재취업 실패로 등 떠밀리듯 장사를 시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폐업 이후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들도 다시 창업의 문을 연다. 결과는 참혹하다. 창업 초기 월 500만~1000만원 수준의 수익을 기대하지만, 현실은 적자와 카드 돌려막기다. 여기다 노동법과 노무관리·세금 징수·법적 규제·정책정보 부족 같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수없이 직면하고, 부가세나 종합소득세 같은 숨은 비용을 간과하는 시행착오를 겪기 일쑤다. 음식점이나 카페 창업의 경우 치열한 경쟁도 뚫어야 한다. 수천만원의 퇴직금에 대출금을 더한 창업이었지만 조용한 골목이 사실 정글이었다는 것을 사업에 뛰어든 후에야 뼈저리게 느낀다.
특히 재취업 한계로 자영업에 뛰어든 은퇴자들이 경쟁력과 생존력을 갖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가진 기술이 부족해 비교적 투입 비용이 적고 진입이 쉬운 퇴로를 택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음식점 같은 과밀 업종에 발을 들이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폐업한 97만개 중 60세 이상의 고령은 24.4%. 2023년(22.3%), 2024년 (22.7%)보다 늘었다. 폐업을 결심할 당시 부채는 20대 이하가 3567만원, 30대가 7295만원, 60대 이상은 9897만원이다. 어렵게 선택한 창업이지만 결국 남은 건 빚의 굴레다.
"은퇴자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자영업자는 줄지 않을 겁니다" 기관 관계자가 전한 확신은 그래서 더 무겁다. 이미 포화상태인 자영업에 고령 은퇴자들의 유입은 골목경제의 낮은 생산성과 출혈 경쟁, 금융건전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문제가 누적되지 않기 위해선 은퇴자의 재취업 등 노동시장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또 사업전환 지원, 대출 상환부담 완화, 진입장벽 설계, 고령 창업자 전용 교육과 재기 지원 등으로 소상공인·자영업계 구조적 위험을 낮출 필요가 있다.
은퇴는 노동의 끝에 있지만, 새로운 문을 열 기회기도 하다. 문 뒤의 퇴로가 잔인한 가시밭길이 되지 않고, 골목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되지 않기 위해선 이제 노동시장과 자영업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