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에 돈 몰리는데…황학동 주방거리는 ‘올스톱’ [창업, 지원에서 출구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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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바쁜 월요일에도 개점휴업…용달차도 자취 감춰
가게 새로 낼 사람이 없다…매입·판매 순환 멈춘 중고시장

▲27일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모습. 신품·중고품 집기들이 쌓여있었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서이원 기자 @iwonseo96)

반도체·AI 산업에는 역대급 자금이 몰리며 훈풍이 불지만 골목상권의 자금 순환은 완전히 멎었다. 폐업한 식당에서 집기가 쏟아져도 이를 사들여 새로 장사하려는 사람이 사라지면서, 폐업과 창업을 잇던 자영업 생태계마저 무너졌다. 27일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는 “IMF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날 황학동 주방거리에는 업소용 냉장고와 싱크대, 조리기기, 식당 의자가 점포 앞까지 늘어서 있었지만 물건을 둘러보는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전 내내 일대를 돌았지만 폐업 집기를 싣고 내리는 용달차와 배달 오토바이 몇 대만 눈에 띄었다.

월요일은 휴무인 음식점이 많아 요식업자들이 주방거리를 가장 많이 찾는 날이다. 아버지와 함께 식품기계 매장을 운영하는 임준혁(31) 씨는 “원래 월요일이 가장 바쁜 날인데 지금 보이는 사람은 대부분 시장 상인”이라며 “손님보다 비둘기가 더 많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고객이 장사가 잘돼야 2호점, 3호점을 내면서 다시 찾아오는데, 지금은 추가 개업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황학동 주방거리에 쌓인 집기들. (서이원 기자 @iwonseo96)

황학동 주방거리는 폐업한 식당에서 나온 냉장고와 화구, 작업대 등을 매입해 신규 창업자에게 되파는 곳이다. 폐업과 창업이 반복되며 중고 집기가 순환했지만 최근에는 매입과 판매가 함께 멈췄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1994년부터 황학동 일대에서 일해온 강인철(58) 씨는 “예전 같으면 월요일 아침부터 용달차가 물건을 내리고 손질한 집기를 다시 싣고 나가야 한다”며 “지금은 상차도 하차도 없이 시장 전체가 ‘올스톱’된 상태”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의 폐업 부담은 노란우산 폐업공제금에서도 나타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상반기 폐업공제금 지급액은 2023년 6671억원에서 2024년 7588억원, 지난해 8345억원, 올해 9667억원으로 매년 늘어 3년 새 44.9% 증가했다. 지급 건수도 같은 기간 5만8608건에서 6만2868건으로 7.3% 늘었고, 상반기 지급액만 1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폐업 증가가 황학동의 거래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집기를 사갈 신규 창업자가 사라지면서 중고업체도 재판매가 어려운 물건을 선뜻 매입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수리비와 운송비를 건지기 어려운 집기는 황학동에 들어오기 전 폐기되기도 한다.

강 씨는 “다시 팔기 어려운 물건은 철거업자도 가져오지 않는다”며 “고물상에서 받지 않으면 폐업자가 돈을 내고 폐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환위기 때는 퇴직금을 들고 작게라도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어 지금보다 훨씬 나았다”며 “현재는 빈 가게와 폐업 사례를 본 예비 창업자들이 대출까지 받아 시작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부터 한다”고 말했다.

황학동에서 40년 가까이 식품기계를 취급한 박문욱(73) 씨도 “IMF 때는 자금 회전이 어려웠어도 물건은 팔렸지만 지금은 아예 거래가 없다”며 “지난주에는 제품을 한 대도 팔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중고기계를 분해하고 수리해 새것처럼 만들어놔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며 “식당들도 비용을 아끼려고 기계를 사는 대신 몸으로 때우고 있다”고 했다.

남아 있는 창업 수요도 과거와 달랐다. 20년 넘게 황학동에서 주방기기를 판매해온 권혁민(60) 씨는 신규 창업자가 주방 전체를 새로 맞추는 거래는 거의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기존 점포를 인수한 뒤 부족한 장비 몇 개만 추가로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권 씨는 “IMF 때는 폐업하는 곳도 많았지만 다시 가게를 열려는 사람도 많았다”며 “지금은 신규 오픈이 거의 없고 기존 점포를 인수해 필요한 집기 몇 가지만 사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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