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재기 필요 vs 도덕적 해이 우려 [빚 탕감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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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연체채무 경제적 재기 필요성은 공감
“상환 불능자 등 대상자 엄격한 선별 필요”
소득 보전 등 재정 지원이 우선이란 지적도

(그래픽=김소영 기자)

정부가 장기 연체채무자의 채무 정리에 속도를 내면서 ‘빚 탕감’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둘러싸고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상환 능력을 잃은 채무자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경제활동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일률적인 탕감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며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선다.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장기 연체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했다. 다만 빚 탕감은 엄격한 선별을 전제로 해야 하며, 일부 전문가는 채무 면제보다 재정적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탕감 필요성을 인정하는 전문가들은 회복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진 채무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장기 채무자의 빚을 정리하는 것은 경제적 재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탕감 이후 실제 경제생활을 다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탕감 대상과 기준이 불명확하면 도덕적 해이가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제기됐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평생 채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며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책이 잘못 확산하면 정부가 결국 빚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채무 탕감은 상당히 신중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성패가 누구의 빚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 것인지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소득과 재산, 연체 기간, 채무 발생 원인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상환 불능자를 정교하게 가려내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1년 정도 연체한 채무까지 탕감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장기 연체채무는 정책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생활비 때문에 생긴 빚인지, 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로 발생한 빚인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성실하게 빚을 갚은 채무자들과의 형평성을 보완할 장치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정환 교수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있는 만큼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를 잘 구축하는 것이 시스템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재기를 지원하더라도 빚 탕감보다 이자 감면이나 상환 기간 연장, 소득 지원을 우선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 면제보다는 이자 부담을 낮추고 상환 기간을 늘리거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 빚을 탕감해준다고 하면 누가 열심히 빚을 갚으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채무 면제를 위해서는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상환 능력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쉬운 문제가 아니다”며 “취약계층은 사회복지 차원에서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채무 탕감 과정에서 민간 금융회사가 부담할 손실을 어떻게 분담할지도 쟁점으로 꼽았다.

본지 자문위원인 곽범국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역시 “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채무자라면 무조건적인 빚 탕감보다 재기를 위한 재정적 지원이 먼저”라며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 등 기존 지원 체계를 충분히 활용하고, 지원이 필요하다면 금융이 아닌 재정의 영역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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