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도 고용 역주행하는 '고용 없는 성장'⋯피지컬 AI 확산에 일자리 추가 감소 우려
27%는 고용ㆍ소득 위기 직면 예상
반도체 호황 불구 ‘고용 없는 성장’
메가프로젝트도 AIㆍ반도체 쏠림
“산업 재편 등 대응책 마련해야”

국내 고용시장의 버팀목인 제조업이 흔들린다. 취업자가 24개월 연속 감소한 데 더해 피지컬 AI가 촉발할 구조 전환도 다가오고 있다.
19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제조업 취업자 수는 2024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24개월 연속 감소했다. 분기로는 2024년 3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 감소세다. 5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감소 폭이 14만 명까지 확대됐다. 유례없는 반도체 수출 호황에도 제조업 고용은 줄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고착화하는 양상이다.
그간의 제조업 취업자 감소에는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 고금리·고환율에 따른 거시경제 불안과 중동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고용수요 자체가 줄었다. 일자리의 유형도 변했다. 기업들이 채용·교육비용을 줄이고자 수시 공개경쟁채용(공채)을 상시 경력채용으로 대체하면서 신규 채용이 크게 위축됐다. 반도체 제조업이 AI 수요 확대로 호황을 누리지만, 제조업 고용은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업은 부가가치 대비 고용창출력이 낮은 대표적인 산업이다. 수출과 국가 경제는 견인하지만, 고용 창출 효과는 제한적이다.
제조업 고용이 회복되려면 근본적으로 철강, 석유화학 등 기존 주력산업이 회복돼야 하는데, 3대 메가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정부 산업정책은 AI, 반도체, 데이터에 쏠려 있다.
앞으로 고용시장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AI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발간한 BOK 이슈노트 ‘AI와 한국경제’에서 국내 일자리의 51%가 AI 도입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24%는 혜택을 보지만, 나머지 27%는 고용·소득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에는 AI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기존 AI 기술이 주로 서류 작성 등 단순 사무직을 대체했다면, 이제는 물리적 실체를 갖춘 피지컬 AI가 제조 현장의 생산직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피지컬 AI는 로봇 하드웨어에 AI, 첨단 센서가 결합한 형태다. 과거 산업용 로봇이 통제된 환경에서 명시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규칙에 따라 반복 작업만 수행했다면, 피지컬 AI는 스스로 환경을 인지하고 학습해 돌발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한다. 해외에선 미국, 중국 등이 이미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했다. 국내 기업 중에선 현대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실전 투입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피지컬 AI는 ‘사람 없는 공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5 미래 일자리 보고서(Future of Jobs Report)’에서 2030년까지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지만 1억 7000만 개가 새로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제조업 일자리는 이 중 사라질 우려가 큰 ‘자동화 고위험 일자리’에 해당한다.
변화를 거부하기도 어렵다. 국회예산정책처는 ‘6월 대외경제동향’ 보고서에서 한국의 AI 도입률이 향후 10년간 비교대상인 주요 7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한국) 중 가장 큰 폭으로 확대(6%→50%)되지만, 생산성 향상은 미국, 영국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AI 노출도가 낮은 4개 산업(제조업, 건설업, 음식·숙박업, 광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다. 예정처는 한국 제조업이 생성형 AI 노출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노동생산성은 높은 만큼, 로봇 AI를 적용하는 피지컬 AI에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지형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해 국가 차원의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9일 재정경제부와 KDI가 개최한 ‘일의 미래: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노동시장’ 포럼에서 ‘AI 시대 노동시장: 평가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한 연구위원은 “AI로 인한 생산성 격차 확대와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은 AI 전환(AX) 투자를 지원하되 단순 인건비 절감이 아닌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 창출에 방점을 둘 필요가 있고, 중견·대기업에 대해선 임금 및 재배치 등 내적 유연성을 높이면서 대량 해고 가능성은 낮추는 방향의 노력을 지원하고 기술 도입 및 숙련 투자 관련 노사 간 협의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정부의 청사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고용노동부는 이달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에서 노·사·정이 제시한 ‘산업전환 고용안정 7대 기본원칙’에 따라 선제 대응, 기회 창출, 성과 향유 등 3대 추진 방향과 7대 실천과제를 내놨다. 대부분 내용은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그쳤다. ‘한국형 AI 노출지수(K-AIOE)’를 개발해 AI 도입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취약 업종에서 직업훈련과 실무교육, 재취업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도가 핵심이다.
향후에는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일자리 감소에 따른 소득 보전과 기본소득 등 새로운 소득보장 체계도 주요 정책 의제로 논의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