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배달라이더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처음 인정한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다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근로자성 판단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다만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플랫폼 노동의 특수성을 반영한 만큼 보험설계사 등 다른 특고 직종으로 곧바로 확대 적용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1부(이지영 황성미 박성윤 고법판사)는 3일 배달라이더 A 씨가 배달대행 플랫폼 업체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및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 씨의 근로자 지위를 부정한 1심을 뒤집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해당 여부는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종속적인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라이더가 플랫폼 앱을 통해서만 배달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고, 배달 업무의 기본적인 수행 방식과 보수 산정 기준도 회사가 정한 구조에 따라 결정됐다고 봤다. 또 관리자 프로그램을 통한 실시간 위치 확인, 단체대화방을 통한 배차 지시, 배차 취소와 페널티 부과 등 회사의 구체적인 관리·감독이 이뤄졌다는 점도 근로자성을 인정한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자 보호도 강조했다. 재판부는 플랫폼 노동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근로기준법 규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며, 별도 입법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개별 사안에 맞게 근로기준법을 탄력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한 최근 대법원 법리를 하급심이 받아들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대표변호사는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 판단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하급심이 수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배달라이더는 다른 특고 직종보다 종사자 수가 많아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파급력도 크다”고 말했다.
다만 보험설계사나 학습지 교사 등 다른 특고 직종으로 이번 판단이 곧바로 확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이 변호사는 “기존 특고는 기본적으로 사업주와 일대일 관계가 전제되지만 플랫폼 노동은 플랫폼 회사와 가맹점주 등이 얽혀 있어 사용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번 판결은 플랫폼 노동의 특수성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다른 특고 직종에 그대로 적용할 만한 판례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강서영 법무법인 원 변호사도 “근로자성 판단은 개별 노동자가 처한 구체적 근로 조건과 계약 내용, 업무 자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는 문제여서 하나의 판례를 다른 직종에 쉽게 확장해 적용하기는 어렵다”며 “같은 직종, 같은 회사에 속한 노동자라도 사실관계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의 영향은 오히려 플랫폼 기업들에게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플랫폼 회사가 라이더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통제했는지가 매우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며 “플랫폼 회사들은 어느 정도 수준의 관리·감독이 근로자성 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참고해 내부 운영 방식과 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