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만 탓할 일 아냐…사회가 만든 언어 함께 돌아봐야”

5·18 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 제주4·3사건 등 우리 사회의 역사적 비극이 온라인에서 ‘밈(meme)’과 유머 코드로 소비되는 현상이 확산하면서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배재고 야구부 응원 논란 역시 일부 학생들의 일탈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되던 혐오와 조롱의 문화가 학교 현장으로 확산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교육계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혐오 표현 사용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온라인 플랫폼과 또래 문화의 영향을 받는 사회화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국다양성연구소가 지난해 교사를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청소년들이 차별·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복수응답)로 ‘온라인 커뮤니티의 영향’을 꼽은 응답이 3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주변 또래의 영향’(27%), ‘차별·혐오 인식 부족’(21%), ‘언론·미디어 노출’(16%)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역사적 사건을 온라인에서 소비되는 밈과 유행 코드로 먼저 접하면서 역사적 맥락과 공동체의 기억이 희석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5·18민주화운동 등을 희화화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파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이 밈 형태로 반복 소비되면서 또래 문화와 결합해 놀이처럼 확대·재생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도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접한 표현을 또래 집단 안에서 자연스럽게 따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놀이처럼 소비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건의 무게감이 점차 희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을 청소년들의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밈과 유행어 상당수는 청소년들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인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치·사회 영역에서 먼저 생산되고 확산한 뒤 청소년 문화로 흘러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청소년 문화만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분열과 혐오의 언어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며 “플랫폼에서는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확산력이 크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보다 웃음과 조롱의 코드가 먼저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이어 “학생 개인을 비난하는 데 머물기보다 사회가 어떤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해 왔는지 함께 성찰하고 재발 방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반복돼 온 지역 비하와 역사 왜곡 표현에 우리 사회가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자극적인 표현이 온라인에서 관심을 끌고, 이를 다시 정치권과 언론 등이 인용하는 과정에서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공론장에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됐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그동안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지역 비하와 혐오 표현이 반복됐음에도 일관된 사회적 비판과 제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 문제로만 접근하면서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 약화됐다”며 “이번 일을 단순히 학생들을 비난하는 데서 끝낼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혐오 문화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