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SMIC 앞세워 자립 속도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대만까지 중국과의 기술·공급망 분리에 속도를 내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사실상 두 개의 진영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과 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분리되는 ‘블록화’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과거 대만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양쪽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펼쳤지만,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미국 중심 공급망 편입이 빨라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더욱 앞당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수출 규제로 엔비디아 AI 그래픽처리장치(GPU)인 ‘H20’의 중국 판매가 제한되자 화웨이는 AI 가속기 ‘어센드(Ascend)’ 개발에 속도를 냈다. 910B와 910C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H20 대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H20의 중국 수출을 제한해 왔다. 잠시 수출을 허용했을 때에도 중국은 이를 수입하지 않고, 자체 AI 반도체 개발 역량 강화에 무게를 두곤 했다.
수출 통제가 완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국 기업들은 우회 무역과 비공식 유통망을 통해 첨단 반도체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 엔비디아 GPU를 탑재한 서버 완제품을 제3국을 거쳐 중국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으며 화웨이가 위장회사를 통해 대만 TSMC에 첨단 AI 칩 생산을 의뢰한 사실도 드러난 바 있다. 중국 선전 일대 암시장에서는 미국의 수출 규제 대상 반도체가 여전히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제재가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압박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술 자립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에서 “(중국의) 국산화로 인해 수입이 감소했다면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 자립도가 높아진 측면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신다윗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 박사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는 결국 중국에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압박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더욱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 박사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사례도 유사한 사례로 꼽았다. 당시 한국은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계기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며 기술 자립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기술 독립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초기 AI 가속기인 화웨이 ‘어센드 910A’는 TSMC 공정을 활용했지만 이후 출시된 ‘어센드 910B’는 중국 파운드리인 SMIC에서 생산된다. 미국과 대만의 공급망에서 멀어질수록 중국 내부의 반도체 생태계 구축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