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피해자 조카는 재심청구 못하게 한 형소법...헌재 "헌법불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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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이투데이DB)

헌법재판소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권위주의 통치기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재심청구권자를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로 한정한 형사소송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4일 형사소송법 제424조 제4호 중 ‘유죄의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3건을 병합해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의 위헌성은 인정하면서도 입법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헌재는 내년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계속 적용하도록 했다.

청구인 박모 씨와 송모 씨는 1948년 여수·순천 사건에 연루돼 광주호남계엄지구사령부 고등군법회의에서 각각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뒤 대전형무소에 이감됐다가 1950년 방첩부대·헌병대·경찰 등에 의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희생된 이들의 조카들이다. 또 다른 청구인 지모 씨는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1993년 사망한 천주교 성직자의 조카다.

이들은 모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형사소송법상 재심청구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후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헌법소원을 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424조 제4호는 유죄 선고를 받은 자가 사망하거나 심신장애 상태인 경우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뉴시스)

우선 헌재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권위주의 통치기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 사건은 일반 형사사건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봤다.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이후에도 진실규명 활동을 억압해 장기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피해자가 미혼으로 사망하거나 일가족이 희생돼 적법한 재심청구권자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며 “재심청구권자인 친족이 남아 있었더라도 국가가 진상규명 시도를 방해하는 등으로 인해 재심을 청구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십 년이 지나 사건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물론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까지 사망한 경우도 빈번했다”며 “적법한 재심청구권자가 재심을 청구할 수 없게 된 데에는 국가가 주체가 된 조직적 불법행위와 이후 장기간 이어진 권리행사 방해가 있어 이 같은 사정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헌재는 검사의 직권재심청구 제도만으로는 권리구제에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재심청구권자가 아닌 친족이 검사에게 직권재심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가 없고, 검사가 청구하지 않기로 결정하더라도 이를 다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국가가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채 판결이라는 형식을 빌려 국민에게 불법행위를 저지른 예외적 사건에서까지 법적 안정성 요청이 재심청구권자가 아닌 친족의 재판청구권 보장의 필요성을 희생시킬 정도로 중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즉시 효력을 상실시킬 경우 오히려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의 재심청구 근거까지 사라져 법적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재심청구권자의 범위를 확대할지, 재심청구권자가 아닌 친족이 검사에게 재심청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검사가 적절한 처분결과를 통지하도록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입법자의 재량”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재심청구권자를 한정한 것은 구체적 정의나 재판의 적정성과 법적 안정성을 조화시키고 사법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서 자의적 입법으로 보기 어렵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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