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 수입 없는 고령층 건강 취약 계층 내몰려

#. 서울 금천구에 사는 박모(68) 씨는 지난해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추가 검사를 권유받았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에 검사비와 치료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통증이 심해질 때만 진통제로 버티던 박 씨는 결국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는 "돈 걱정 없이 몸부터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며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 아파도 참고 넘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시민의 건강 지표가 소득 구간에 따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한 계층일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한 반면, 저소득층은 건강 취약계층에 머무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서울시 먹거리통계조사에 따르면 최저 소득 구간과 바로 위 구간의 격차가 가장 컸다. 지난해 월평균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건강 점수는 5.5점이었지만 '200만~300만원 미만' 가구는 6.6점으로 1.1점 높았다. 이는 소득 구간별 건강 점수 상승폭 가운데 가장 큰 차이였다.
이후 건강 점수는 △300만~400만원(6.9점) △400만~500만원(7.1점) △700만원 이상(7.34점) 등 소득이 늘어날수록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소득 수준과 건강 상태가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인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2년 한국의료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서도 고소득 가구와 저소득 가구의 의료 이용 여력 차이가 확인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소득 상위 5분위 가구의 연간 의료비 지출은 398만5094원으로 하위 1분위(178만9598원)의 2.2배에 달했다.
계층 간 의료비 지출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1분위 가구의 의료비는 2019년 140만491원에서 2022년 178만9598원으로 27.8% 증가했지만, 5분위 가구는 같은 기간 274만4926원에서 398만5094원으로 45.2% 늘었다. 의료비 증가율 역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1.6배 이상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히 의료비 부담 차이가 아니라 의료 서비스 접근성과 이용 기회의 차이로 해석한다. 고소득층은 예방·검진·치료 등 의료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비용 부담 때문에 필요한 의료 이용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민간의료보험 가입 건수도 5분위는 평균 6.2개인 반면 1분위는 2.3개에 그쳤다. 소득에 따라 의료 안전망의 두께 자체가 달라지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만난 이모 씨(63)는 “예전부터 공사장에 나가 무거운 자재를 옮기다 보니 관절이 일찍 상했다”며 “몇 차례 병원도 가봤지만 치료비 부담이 커 자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먹거리통계조사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건강 취약계층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확인됐다. 70대 이상 시민의 건강 점수는 평균 5.12점으로 소득 최하위층(5.5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특히 안정적인 노동 수입을 확보하기 어려운 고령층이 건강 취약계층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건강 격차의 큰 흐름은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며 “소득이나 자산이 많은 노인들은 건강 관리와 여가 활동에 투자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 노인들은 그렇지 못해 격차가 누적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년연장 역시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불평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앞으로 노인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활기찬 노후 생활을 위한 시장형 일자리 확대와 창업 지원 등 보다 적극적인 정책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