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구조는 숫자에서 드러난다. 무담보 중소기업 대출의 위험가중자산(RWA) 적용률은 75~100%인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20~70%에 그친다. 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려면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한다. 부실이 발생하면 담당자는 감사와 문책, 인사상 불이익까지 걱정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혁신기업에 돈을 넣으라'는 요구는 힘을 얻기 어렵다.
부동산 쪽으로 돈이 기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동산은 공시지가와 실거래가가 공개돼 있고 근저당권 설정과 경매 절차도 제도화돼 있다. 담보를 잡으면 위험과 회수 가능성을 계산하기 쉽다. 반면 혁신기업 투자는 기술과 시장, 경영진 역량을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 판단이 개입되는 순간 책임도 따라온다. 결국 부동산 선호는 보수적 관성만이 아니라 제도와 인센티브가 만든 결과다.
금융회사가 움직이려면 그만한 투자처도 있어야 한다. 성장산업에는 기술은 있지만 사업모델이 약하고, 가능성은 보여도 아직 매출로 이어지지 못한 기업이 적지 않다. 성공 사례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금융회사도 위험을 감수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성공 사례는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다음 투자자를 부르는 시장의 신호다.
회수시장도 문제다. 투자자는 유망한 기업이 있는지만 보지 않는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처럼 빠져나올 길이 열려 있는지도 따진다. 출구가 좁으면 자금은 다시 안전한 곳으로 향한다. 생산적 금융이 지속되려면 투자 이후의 시장까지 함께 설계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는 공급 확대에 기울어 있다. 정책금융을 늘리고 은행 역할을 키우고 지원 목표치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돈이 들어가도 머물 구조가 없으면 숫자는 실적으로 남아도 흐름은 바뀌지 않는다. 벤처캐피털 투자 비중이 1~2% 수준에 그치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정책금융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이스라엘 요즈마펀드가 반복해서 언급되는 것은 국가 자금이 후순위로 위험을 부담해 민간과 해외자본이 들어올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중물은 물을 퍼붓는 것이 아니라 물이 흐를 길을 트는 것이다. 정책금융도 민간자본이 움직이도록 위험을 낮추고 후속 투자의 길을 열어야 한다.
실패를 대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혁신기업 투자는 본질적으로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런데 실패가 곧 문책으로 이어진다면 현장은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감수할 수 있는 실패의 범위와 기준을 정하는 일도 생산적 금융의 일부다.
결국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만의 과제가 아니다. 산업정책과 실패를 나눌 책임 구조, 자금을 회수할 자본시장이 함께 움직여야 작동한다. 자금이 부동산과 담보 중심으로 쏠리는 현실은 시장이 보내는 신호다. 혁신기업으로 흐름을 돌리려면 시장이 다르게 움직일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적 금융의 성패는 공급 규모보다 성장산업에 자금이 머물 판을 만들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