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데이터 전력 수요 급증·중동 전쟁 등도 겹쳐
거대 배터리 단지 속속 건설·가동
“올해 전력망 핵심 인프라 등극 원년 전망”

#호주 AGL에너지는 2024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대규모 배터리 시설 건설을 시작했는데, 6개월 후 같은 주에서 MWh(메가와트시)당 비용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또 다른 프로젝트를 승인받았다. 이는 배터리 경제성이 유례없이 가파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를 활용한 초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설이 급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배터리 설치비용이 급락한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붐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과 중동 전쟁에 따른 화석연료 가격 상승이 맞물렸다. 이에 올해 배터리가 글로벌 전력망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31일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전력망 배터리 설치 비용은 지난해 MWh당 78달러(약 11만7500원)로 전년보다 27% 줄어들었다. 또 이는 2018년과 견줘서는 7년 만에 약 75% 급감한 것이다. 또 2035년(58달러)까지 추가로 25%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이러한 배터리 시장의 가파른 가격 하락은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전력망 운영 패러다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석탄·가스 화력발전소가 전력 수급을 조절하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남는 재생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하는 배터리 기반 체계로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2022년 에너지 위기 이후 태양광과 풍력 설비가 급증한 상황에서 배터리 사업자들은 저가 매수 및 피크시간대 판매를 통해 전력 수급을 조절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가령 작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와라타 슈퍼 배터리라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부분적으로 가동된 직후, 저녁 피크 시간대에 배터리가 전력망에 공급하는 전력량이 가스 발전소보다 많아졌다. 이 시설은 올해부터 완전히 가동될 예정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배터리 설비들이 잇달아 전력망 연결에 나서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미국이 추가할 기록적인 발전 설비 용량 가운데 배터리가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배터리 프로젝트들은 전력망 운영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로 건설되고 있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에서는 최근 총 7.4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초대형 저장시설 3곳이 가동을 시작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과거 석탄 광산 부지에 건설된 두 개의 거대한 배터리 단지가 올해 가동을 시작한다.
블룸버그는 올해 유럽·중동·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의 확장에 힘입어 배터리 전력망 설치량이 전년 대비 약 3분의 1가량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에너지 수요, 여기에 중동 전쟁은 비싼 화석 연료의 대안에 대한 수요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면서 “세계 전력 시스템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저렴한 배터리의 등장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뤄지고 있다”고 짚었다.이어 “올해는 배터리가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에서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대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브렌트 워너 전력부문 책임자는 “이제 전력 시스템 투자를 고려할 때 배터리가 가장 매력적인 옵션 중 하나가 되는 시점에 도달했다”며 “배터리 저장 시스템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약 요인도 있다. 업계 대부분이 여전히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긴장과 미국의 관세 정책에 취약하다. 전력망 연결 지연, 인허가 문제, 시장 규정 변화 등 기존 전력산업이 안고 있는 병목 현상도 배터리 대규모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배터리 붐이 꺾일 것으로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호주 워라타발전소를 보유한 아카이샤에너지의 닉 카터 최고경영자(CEO)는 “전력 수요는 올라가고, 데이터센터는 늘어나며 재생에너지는 더 많이 지어지고 있고 석탄 발전은 퇴출되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전력망용 배터리에 대한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