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푸드코트 시스템’이 바꾼 재래시장 풍경
60대 은퇴자부터 방황하던 청년까지 품어
특산물 메뉴 개발이 지역 농가 견인
외지 청년 뿌리내린 ‘로컬 인큐베이팅 거점’

21일 오후 찾은 충남 예산시장 초입은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에 들어서자 중심부의 대규모 중앙 테이블을 동그랗게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매장들이 늘어선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은 원하는 가게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사다가 광장에서 편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그대로 일어설 때 펼쳐지는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손님이 떠나기 무섭게 앞치마를 두른 종업원들이 다가와 순식간에 테이블을 치워냈다.
낙후된 재래시장에 이식된 이 정교한 푸드코트형 시스템은 예산시장을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밀어 올린 숨은 주역이다. 최근 자본 유입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시선이 존재하기도 했으나, 현장에서는 일시적인 마찰 너머에서 작동 중인 정교한 상생 구조와 지역 경제의 자립 생태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가 60세가 넘어가니까 서비스 업종에서도 나이 제한을 받아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 구하더라고요. 그런데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에서 다시 일자리를 얻게 됐죠.”
광장 청결을 책임지는 '깔끔이사업단' 김백오(60) 씨의 말이다. 이 관리 시스템은 지자체 보조금이 아닌 광장 중심의 ‘불판을 빌려주는 집 2’ 등 더본코리아 직영 매장의 수익금으로 운영된다. 현장 상인들은 이 매장이 시장을 지탱하는 지속 가능한 복지 안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매장은 애초 상인회 소속 상인 1명이 위탁 운영해 공동 운영비를 조달하는 구조였으나 해당 상인이 분담 중단을 선언하며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더본코리아 측은 광장 관리 체계를 유지하고 자활 주민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운영 마이너스를 감수하고 직영 형태로 전환했다.
김 씨는 “우리 사업단에는 몸이 아프거나 사정이 있어 일반 직장에 가기 힘든 30대 초반이나 40대 후반 청년들도 있다”며 “여기서 일하며 월 200만 원 초반대의 소득을 안정적으로 받으면서 맞벌이라도 할 수 있으니 요즘 같은 세상에 얼마나 감사하고 만족스러운지 모른다”고 전했다.

원주민 상인과 외지 청년 상인의 동반 성장 여부 역시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핵심 지표다. '이신복 명물 꽈배기'를 운영하는 이신복(47) 사장은 예산 토박이로, 오일장 노점을 전전하다 정식 입점한 대표적 지역 기반 상인이다.
이 씨는 “밖에서 노점을 뛰다 정식 점포 제안을 받으니 처음엔 걱정이 많았다”면서도 “백종원 대표님이 기존 레시피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하라고 인정해 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점포가 생기고 가장 좋은 점을 묻자 “3년 차가 된 지금은 일단 돈을 더 많이 벌고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게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어 참 좋다”며 “가게 이름도 제 이름을 따서 지어주셔서 항상 자부심을 느낀다”고 답했다.
더본코리아 측은 임대료 폭등을 막기 위해 시장 내 유휴 점포들을 선제 매입, 청년과 기존 상인들에게 월 20만~30만 원 수준의 초저가 임대료로 재임대하는 전대차 방식을 유지하며 상인들의 안정적인 자립 기반을 다져주고 있었다.

시장을 걷다 보면 예산 사과 디저트 매장과 예산 국숫집들이 눈에 띈다. 자영업 불황 시대에 청년들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인큐베이팅 거점이다.
한화이글스 야구선수 출신인 연돈불카츠 양경민(29) 사장은 "운동을 그만두고 근처에서 방황하거나 진로를 못 찾은 친구들이 주변에 정말 많다"며 "솔직히 그런 친구들에게 이런 시장에도 아직 기회가 많이 열려있다고 추천해 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양 사장은 "서울에서도 장사를 해봤지만, 예산만큼 장사하기 좋은 기회의 땅은 없는 것 같다"며 "처음에 내려올 땐 이방인이라 적응이 걱정이었는데 기존 상인 어르신들이 텃세는커녕 자기 가게에 있는 것들을 막 챙겨주셔서 정말 수월하게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스101 출신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신광정육점 김국헌(30) 사장은 “연예계 활동을 멈추고 3년이라는 고민의 시간을 보낸 끝에 대표님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도 진짜 뛰어들면 해낼 수 있다는 걸 배웠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사장은 "저희끼리 돈을 조금씩 모아서 크리스마스 때 광장에 6m짜리 트리도 설치하고 산타 분장 이벤트도 진행했는데 어르신들도 참 좋아하셨다"며 "방문객들이 오셔서 '시장 잘해놨네 가격 싸고 예쁘다' 칭찬해 주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들의 선배 격인 '골목양조장' 박유덕(37) 대표는 2020년 쇠락한 시장통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박 대표는 “제가 2020년에 처음 왔을 땐 이 양조장 자리 빼고 주변이 다 셔터 내려간 창고 같은 유휴 공간이었고 코로나19까지 터져 막막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들어오자마자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죠. 식품공학 전공을 살려 술 개발은 직접 할 수 있었지만, 유통과 판로가 막막했었다”며 “이때 백 대표님이 본인 얼굴과 사진을 제품에 쓸 수 있도록 판로를 열어주시면서 숨통이 트였다”고 전했다.
민간의 유통·홍보 지원을 발판 삼은 골목양조장은 대형마트 입점은 물론 미국 수출길까지 열었다. 현재 소비하는 예산 쌀은 연간 140~150톤(t), 예산 사과는 약 30t에 달한다. 타 지역 진출 제안에 대해 박 대표는 “제가 다른 거점에 가기보다 그 지역 청년들이 기회를 얻어야 맞다”며 “저는 예산 본점에서 수출과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지역 상생”이라고 강조했다.
신양튀김 손우성(44) 사장을 비롯한 청년들은 이제 시장을 넘어 지자체와의 거대한 상생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손 사장은 “여름에는 확실히 시장 손님이 많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말이면 예산시장 앞에 주차장 공간을 활용한 야간 포장마차가 열리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며 “상인분들이랑 번갈아 가면서 저녁에 안줏거리와 생맥주를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가을이 되면 주변 학교에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을 불러 저녁에 가을 음악회가 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며 “영업시간이 지나 불이 꺼진 시장을 활용해 공포 체험 테마 코스를 만들고 공주대 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한다면 청년층 유입과 상생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손 사장은 “이제는 시장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예산이라는 지역 자체와 상생할 수 있는 것들을 짜보고 있다”며 “예당호에 방문하고 시장에 오시면 할인을 해드린다거나 덕산에 있는 온천 워터파크 시설인 스플라스 리솜과 연계해 통합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 지역 경제를 함께 살리는 로드맵을 연구 중”이라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더본외식산업개발원에 따르면 ‘예산상설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는 지역 관광객 인구를 기존 88만 명에서 500만 명으로 468% 급증시키며 침체한 구도심 상권과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상권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역혁신'부터 특산물 메뉴 개발인 '로컬콘텐츠', 청년 창업자를 기르는 '인재양성', 그리고 '사회가치' 창출로 이어지는 4대 핵심축이 유기적으로 가동된 결과다.
더본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침체한 지역 상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다시온(다시 시장에 온기) 프로젝트'를 본격 전개하고 있다"며 "외식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지역 특산물 축제, 청년 창업 및 관광 자원화 프로젝트를 연계해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의 자생력을 높여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고 인구를 유입해 우리 지역만의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지역 자활센터와 일자리를 연계하고 기존 상인들과 화합하며 공존하는 시장을 만들어가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