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이덕환 칼럼] 의료·교육 현장 흔드는 악성민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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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사법제재에 일선 위축 우려
법리잣대로는 진료·교권 회복 안돼
무고죄 강화해 엄벌 대처 고려해야

법원이 술에 취해 뇌경색 증상을 보이는 환자를 진료한 전공의 2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무려 8년 전인 2018년에 일어난 일에 대한 뒤늦은 판결이었다. 이미 민사소송을 통해 상당한 금전적 보상을 받아낸 환자 측이 형사소송까지 제기한 결과였다. 의료계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법원이 응급의료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것이다. 형사처벌을 앞세운 ‘사법(司法)의학적 판단’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응급실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절망적인 인식이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도 믿을 것은 아니다. ‘의료진의 의료행위로 인하여 환자의 생명·신체·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모두 ‘의료사고’로 정의한 것부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의료행위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건강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는 물론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으로 환자에게 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의료사고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제 의사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전문가가 아니라 의료사고의 잠재적 가해자로 전락하게 된다.

의료진에 대한 형사 기소를 강제하는 ‘12대 중과실’에 대한 규정도 볼썽사납다. 자동차의 운전 등으로 사람을 사상(死傷)케 하거나 물건을 손괴하는 ‘교통사고’에서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검찰에게 반드시 형사 기소를 강제하는 ‘교통사고처리법’의 ‘12대 중과실’과 빼닮았다. 의료 정책을 틀어쥐고 있는 의료관리학 전문가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다.

교통사고의 경우에는 중과실의 위반 행위를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 교통신호·제한속도·중앙선은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무면허와 음주 운전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사정은 전혀 다르다. 사망이나 신체 손상을 막는 데 필요한 ‘진단’이나 ‘처치’가 무엇이고, ‘통상적으로 수용되는 진료’가 무엇인지가 도무지 분명치 않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사후 판단은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법관이 법정에서 섣불리 판단할 일도 아니다. 비전문가로 구성된 ‘시민패널’이 끼어들 틈도 없다.

의료진에 대한 형사 기소를 12대 중과실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엉뚱한 목소리도 있다. 경력이 부족한 의사에 의한 무리한 의료사고도 처벌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경력이 짧은 초보운전자가 사고를 일으키면 무조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같은 억지다. ‘경력이 부족한 의사’와 ‘경력이 충분한 의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명의(名醫)’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행운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중과실 유형을 법률에 열거하지 말고, 개별 사건마다 중과실 여부를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통해 따져야 한다는 정체불명 환자단체의 주장도 비현실적인 억지다. 극소수 환자들이 무분별하게 제기하는 민·형사적 처벌 요구에 의한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의료 현장을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환자가 사망했으면 의사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수준의 어설픈 인식은 봉건주의 시대의 왕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낡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의료 붕괴의 현실은 낯선 것이 아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이해찬 교육부의 ‘교사 악마화’로 시작된 공교육 붕괴의 현장에서 익숙하게 경험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 교육부가 주최한 제45회 스승의 날 기념식마저도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교총·교사노조·전교조를 비롯한 3대 교원 단체가 교육부가 추진한 ‘교사의 다짐(교육회복 공동선언)’ 퍼포먼스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교권 붕괴를 부추긴 교육부가 책임을 교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법원이 겸손해져야 한다. 의료 현장에서의 진료·치료나 학교에서의 교육을 법관이 어설픈 법리적 논리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착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의사의 ‘진료권’과 교사의 ‘교권’을 되살리는 일은 어설픈 ‘의료분쟁조정법’이나 ‘교권보호 5법’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법부가 의료·교육 현장을 무너뜨리고 있는 극소수 악성 민원에 대한 ‘무고죄’ 처벌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의사와 교사를 고객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되는 ‘서비스직’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의 건강과 안전은 우리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라는 확실한 인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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