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 반도체 이어 향후 10년 경제 성장 엔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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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한국 경제를 이끌어 온 주력 산업들이 곳곳에서 피로 신호를 내고 있다. 반도체는 중국의 추격과 미·중 갈등의 파고 속에서 수출 주도 산업으로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는 전동화 전환 과정에서 테슬라와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직면했고, 조선은 호황 사이클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철강과 석유화학도 구조적 둔화의 그림자 안에 놓여 있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축이었던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의 산업이 동시에 전환점을 맞으면서 다음 10년을 이끌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제약·바이오가 차세대 산업 후보로 거론된다. 다만 AI 분야는 미국이 기술과 자본, 플랫폼 측면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확보한 만큼 한국은 선도 경쟁보다는 산업 현장에 AI를 접목하는 활용 전략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제약·바이오 산업이 한국 경제의 다음 성장 엔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제약·바이오는 글로벌 고령화라는 장기 수요를 기반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으로 꼽힌다. 한국 역시 임상 인프라와 생산 역량, 연구 인력 측면에서 일정 수준의 기반을 갖추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CDMO) 등 일부 영역에서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레퍼런스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강점이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AI는 미국이 기술과 자본, 플랫폼 측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한 산업인 만큼 한국은 활용 전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제약·바이오는 고령화 수요와 임상·생산 기반, 글로벌 레퍼런스를 동시에 갖춘 분야라는 점에서 한국이 장기 성장 산업으로 키울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자본시장의 흐름은 이 같은 장기 성장 가능성과 다소 엇갈린다. 제약·바이오 섹터 전반에 대한 평가가 보수적으로 바뀐 가운데 일부 기업의 신뢰 훼손 이슈가 산업 전체의 투자 심리 위축으로 번지고 있다. 개별 기업의 성과와 임상 진행 상황, 사업화 역량이 구분되기보다 산업 전체가 하나의 위험 프레임 안에서 해석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긴 시간과 지속적인 자본 공급을 전제로 한다. 신약 하나가 시장에 도달하기까지는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오시밀러 역시 개발과 허가, 상업화까지 상당한 기간이 요구된다. 새로운 약물 전달 플랫폼이나 차세대 치료제는 더 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기간 연구개발이 이어지려면 자본 공급이 멈추지 않아야 한다.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산업의 연구개발 사이클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한 번 식은 투자 사이클은 다시 회복하는 데도 긴 시간이 걸린다.

제약·바이오는 전통 제조업처럼 단기간의 매출 증가나 수주 실적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는다. 임상, 허가, 상업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변동성과 실패 가능성은 피하기 어렵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기적 시각은 산업 전반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바이오는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긴 시간 데이터를 축적해야 하는 산업”이라며 “자본시장이 일시적인 이슈만 보고 산업 전체를 닫아버리면 연구개발 사이클이 끊기고, 한 번 끊긴 사이클은 다시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산업 내부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과장된 공시는 걸러져야 하고 검증되지 않은 기술은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를 오도한 사례에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는 산업을 위축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신뢰 회복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동시에 옥석을 가리는 과정에서 정상적인 기업까지 동일한 불신의 프레임 안에서 평가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 데이터와 진행 상황이 확인되는 기업들까지 같은 기준으로 묶이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과도한 기대가 문제였던 것처럼 과도한 불신도 미래 성장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과장된 공시와 검증되지 않은 기술은 당연히 걸러내야 하지만, 임상 데이터와 개발 단계가 확인되는 기업까지 같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시장도 기업별로 데이터를 구분해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기업은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하고 시장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별 가치를 구분해 평가해야 한다. 정책 당국 역시 단기 주가 흐름이나 일부 기업의 이슈에만 매몰되기보다 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다음 10년을 생각할 때 제약·바이오 산업은 여전히 중요한 후보군에 속한다. 글로벌 수요가 구조적으로 커지고 있고 한국이 생산·임상·인력 기반을 보유한 몇 안 되는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 산업의 연구개발 사이클이 위축될 경우 중장기 성장 기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을 지킨다는 것은 기업에 면죄부를 주자는 의미가 아니다”며 “검증과 책임을 강화하되 성장의 사이클이 끊기지 않도록 자본과 제도, 시장 평가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기대도, 과도한 불신도 아닌 데이터와 시간 위에서 판단하려는 균형 잡힌 시선”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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