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경제단체…기업들 “어디에 장단 맞춰야 하나” [위기의 기업, 길 잃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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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논란 이후 경제단체 ‘몸 사리기’
노란봉투법·상법 개정에 기업 각자도생
“갈등 조율·정책 대안 기능 복원해야”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최근 경제단체들의 존재감이 약화하면서 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 정책과 사법부 판단에 대해 기업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등이 잇따른 논란 이후 목소리를 낮추면서 기업들이 각자 대응에 나서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3일 정치권과 재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대한상의의 보도자료 배포 건수는 9건에 그쳤다. 전년 동기 29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2월 이후 산업통상부 감사가 본격화되면서 사실상 대외 메시지가 중단됐다. 경총과 한경협도 각각 12건, 19건으로 전년 대비 절반 또는 그 이하로 감소했다. 경제단체들이 정책 현안에 대한 공개 입장 표명을 크게 줄인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최근 대한상의의 자료 오류 논란 이후 정부의 강도 높은 대응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상속세 관련 통계 인용을 둘러싸고 이재명 대통령이 직격탄을 날리면서 대한상의는 감사, 임원 교체까지 여파가 이어졌다. 경제단체 전반에 ‘몸 사리기’ 기류가 확산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경제단체 신뢰성 우려에 대해 “자료나 통계, 정책 보고서의 신뢰성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며 “내부적으로 연구용역, 내부 스크린 검증 등의 공신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현재 준비 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공백이 기업 현장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경제단체는 노사 갈등, 입법 이슈, 규제 변화 등에 대해 기업 입장을 정리해 정부와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법률 대응과 정책 해석에 나서면서 비용과 리스크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특히 인사·노무·법무 분야에서 혼선이 크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2ㆍ3조), 상법 개정안 등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변화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통합된 가이드라인이 부족해 기업마다 대응 전략이 제각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제단체를 통해 방향성을 참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내부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잘못 대응할 경우 소송 리스크가 커진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대응 체계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성과급 구조를 고정급과 변동급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을 재정비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또 사후 대응보다 사전 리스크 관리 중심으로 법무 전략을 강화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대응 역시 개별 기업 차원에 머물러 있어 산업 전반의 일관된 방향성을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경제단체의 역할 복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경제단체는 단순한 의견 전달을 넘어 기업과 정부, 노동계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정책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기업의 목소리를 집약해 제도 개선 논의를 주도하는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는 평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단체의 목소리가 계속 필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위축 모드가 장기간 이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하면 이러한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독일 산업연맹(BDI)이나 일본 게이단렌은 정부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산업계 입장을 반영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반면 국내 경제단체는 최근 논란 이후 공개 발언을 최소화하며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경제단체가 침묵을 이어갈 경우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오일선 한국CXO 연구소장은 “개별 기업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정면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부담스럽다. 경제단체들이 몸을 낮추며 최근 기업 사이에서 불만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성과급 문제 등 여러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혼란스러운 문제들에 대해 경제단체도 적절히 목소리를 내고, 정부도 갈등 조율에 나설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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