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호르무즈가 소환한 중국의 ‘에너지 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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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용 석탄발전 가동률 50% 유지
전기화 생태계 구축, 수출준비 마쳐
글로벌 사우스 진출 강화 ‘어부지리’

이란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유가가 출렁이면서 세계 각국이 에너지 수급에 불안해한다. 중국은 원유 수입의 절반, 천연가스 수입의 3분의 1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충격은 피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중국은 베네수엘라와 이란으로부터 저렴하게 원유를 조달해 왔음을 지적하면서 트럼프가 이들 두 나라를 옥죄는 배경에는 다분히 중국 견제라는 포석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의 일반 휘발유 가격은 베이징 기준으로 전쟁 전 리터당 6.77위안에서 현재 8.46위안(5월 초까지 이 가격이 유지된다)으로 25%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약 19% 정도 상승했으니, 중국 소비자가 유가 상승의 충격을 더 크게 받은 셈이다. 가격 통제가 가능한 중국에서 유가를 국제가격에 맞춰 올린 것을 보면, 이 기회에 화석연료 소비도 억제하고 에너지 안보도 챙기겠다는 의지인 것 같다.

중국의 에너지 정책은 ‘전기화(electrification)’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 비중이 중국은 30%, 한국과 미국은 23% 수준이다. 중국의 에너지 공급에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비중은 26%이고, 원자력은 3%, 태양광 및 풍력은 4%, 그리고 석탄이 가장 큰 비중인 61%를 차지한다(2023년 기준). 10년 전과 비교해서 석탄의 비중은 10%포인트 정도 줄었고,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비중은 증가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중국이 석탄발전의 가동률을 의도적으로 50% 수준에 묶어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출렁이는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석탄발전을 언제든 전력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거대한 백업 배터리로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란전쟁은 중국의 에너지 취약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국이 왜 전기화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석유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지만, 전기화를 통해 충격을 내재화할 수는 있다.

중국은 그동안 태양광, 풍력,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그리고 송전망까지 전기를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국내적으로 구축하였을 뿐 아니라 해외로 수출할 준비도 마쳤다.

이번 사태로 중국 정부가 전기화 노선을 더 강하게 드라이브할 가능성이 크다. 첨단 산업에서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공급망에서 벗어나 기술 자립화를 추구하듯이 에너지 공급망에서도 디커플링을 시도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의 오랜 문법은 성장보다는 안정, 효율보다는 통제 가능성이었다. 미국이 화석연료를 통제할수록 중국은 전기화로 대항한다. 중국이 지극 정성으로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는 이유도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 자국 방어용으로 구축한 전기화 생태계가 외부로 뻗어나가는 지점이다. 이번 중동발(發) 에너지 불안의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파키스탄, 인도, 동남아시아 등 미·중 패권 틈바구니에 있는 글로벌 사우스다. 이들은 그동안 저렴한 화석연료에 의존하여 성장해 왔고, 재정적 한계로 인해 선진국 같은 충분한 원유 비축량도 갖추지 못했다.

이들 국가가 앞으로도 ‘천운’을 시험하며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할지 의문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이들에게 경제 이슈보다는 사회 안정을 가져올 매력적인 대안이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싸게 그리고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생산하는 나라이다. 개발도상국은 저렴한 에너지가 아니라 끊기지 않는 전기를 원할 것이며, 중국에 대한 지정학적 경계심은 생존 앞에 무너질 수 있다.

중국은 이들 국가에 파격적인 금융 지원과 인프라 건설을 결합한 포괄적인 에너지 솔루션을 제안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글로벌 사우스 입장에서 미국은 불안을 던져주었고, 중국이 보험 상품을 팔러 온 상황이 되어 버렸다. 미국의 동맹국은 중국의 제안에 꿈쩍하지 않겠지만, 가난한 나라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이란전쟁이 언제 종결될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피해를 본 걸프 국가의 생산 시설이 정상화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미국이 승리하고, 글로벌 화석연료의 수급을 통제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역설적으로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전기화 지배력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미국이 세계정세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패권국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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