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홍준형 칼럼] 빌런들의 전쟁이 일깨운 에너지 안보

기사 듣기
00:00 / 00:00

중동전으로 확인된 석유 의존 심화
운송대안 등 유사시 비상대책 절실
복고수단 포함한 플랜B·C 마련해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우리나라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에너지원 대부분을 중동 원유에 의존해 온 터에 화석연료, 석화산업, 나프타·플라스틱 의존성이 경제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유가 급등으로 팔수록 손해라며 문을 닫는 주유소들이 속출했다. 물가가 오르고 산업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종량제 봉투, 주사기, 각종 의약용품 원료와 재료 등이 동나는 등 곳곳에서 소비자의 머리를 쭈뼛하게 만드는 결핍의 전조가 드리워진다.

사람들은 묻는다. 트럼프는 왜? 이란은 왜 직접 교전 당사자도 아닌 나라에까지 발악적 공격을 가하고 세계 경제를 인질 잡아 협박을 일삼는 걸까? 당하는 쪽은 너무 억울하고 황당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 현실적인 물음은 이 천인공노할 빌런들의 전쟁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이다. 수십 년 군대를 주둔시켜 지켜 주었는데 정작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았다고 힐난하다 급기야 전쟁부장관이 나서 ‘무임승차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뒤끝을 보이는 미국,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며 미국의 침략과 잔혹행위에 단호히 반대할 것을 요구하는 이란, 가자·레바논에서 의도적·체계적 잔혹 행위를 벌이고서도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SNS)에서 전시 상황에서의 비인권적 행위를 홀로코스트와 비교했다고 격렬히 반발한 이스라엘,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서로 죽고 죽이는 그 어느 쪽과도 편 먹을 수 없는 딜레마 상황이다. 어느 편에 서도 악이라면 결국 빌런들의 현존을 받아들여 악마와의 거래라도 해야 한다. 빌런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나라에 대한 실존적 위협을 최소화하는 전제 위에서 모든 가능한 선택지를 챙길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의 가치와 이익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 필요하다. 전쟁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종전 합의를 지켜봐야겠지만, 화전 양면, 장단기 상황 모두에 대응할 전략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종전이 성사되면 최우선으로 두 당사자를 상대로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카드를 챙겨 놓아야 한다. 전쟁 계속이나 확전 상황에 대해서도 미리 우리의 선택지와 그에 따른 영향평가를 통해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막다른 골목, 파견이나 참전 등 처절한 결단의 순간이 닥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에너지 안보의 취약성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경제와 생활 곳곳에 깊이 들어와 있는 화석연료 기반 경제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후위기 극복을 내세워 탈탄소, 에너지 전환을 부르짖었지만 에너지 안보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국가생존 전략이지만, 더 중요한 점은 그마저도 플랜B 없이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플랜B뿐 아니라 플랜C, D 등 더 많은 비상대비계획이 필요하다. 미리미리 경제적 타산을 조정해서라도 공급망 비상대비계획을 짜 원유의 중동의존성을 줄여나갔더라면 어땠을까. 가령 중동 산유국들도 관심을 보인 우리나라 석유비축기지를 활용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했더라면 어땠을까. 중동의 전운을 미리 탐지, 예측할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었다 해도, 호르무즈 해협이 군사 리스크로 돌변할 경우를 대비해 대체 운송루트를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아니 미리미리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해 재생에너지를 크게 늘려 석유 수입 의존성을 줄일 수 있었다면?

플랜B가 필요하다. 비단 유사시 비상대책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기본계획과 함께 항시 챙겨야 할 필수적 대안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탄소경제의 일정 부분을 플랜B로 만들어 탈탄소 과정에서 떨어내 버려야 할 구각(舊殼)이 아니라 그 규모나 기여도는 대폭 축소하더라도 탄소중립을 위한 이행방안으로 삼는 관점이다.

원전이나 화력발전, 석화산업이 사라지면 그를 떠받치던 기반구조와 기술, 인력 모두가 사라져 버린다. 키보드나 더 진화된 인공지능(AI) 시대에 수기, 타자부터 창발적 상상력, 신체 능력과 지력 등 인간의 기본 능력이 퇴화할 수 있듯이 기존의 능력과 자산들이 소실될 수 있다는 퇴화와 상실의 리스크도 적절히 관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이 무용지물이 되는 상황을 상정하여 유선전화나 PCS(개인휴대통신)폰을 비상연락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안처럼 이를테면 ‘비상사태의 레트로X 전략’을 짜둘 필요가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심사원려로 탄력적인 대책을 담은 도구상자를 준비해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