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얹은 플랫폼 다변화에 맥 못 춰
'언론다움' 포기…차별성 유지못해

이달 13일 영국 BBC 로드리 달판 데이비스 임시책임자(팀 데이비 전 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소한 가짜뉴스 사건으로 사퇴하였다)가 “각종 지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지만 비용과 수입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어, 1500~2000명의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메일을 전 직원에게 발송하였다. BBC 전체 종사자의 10%에 달하는 숫자다.
구체적 감원 대상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향후 2년간 5억 파운드(약 9998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감원 발표가 더 충격적인 것은 2024년 7월에 나온 ‘BBC 연례보고서’에서 밝혔던 2026년 3월까지 500명 감축과 2400만 파운드 예산 절감 계획이 종료된 직후 발표되었다는 점이다. 당초 예상보다 BBC의 경영 상태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2028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BBC 재원 구조 개편 논의에서 수신료 유지가 쉽지 않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관적인 전망이 훨씬 많고 심지어 차기 칙허장(Royal Charter·왕실에서 주는 권리보장 문서) 부여도 어려울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경영악화가 감원 같은 기능적 구조조정만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BBC는 제작단가는 급상승하고 있는 반면 프로그램 판권 같은 상업적 수입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공영방송뿐 아니라 모든 미디어가 겪고 있는 문제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들은 영상 제작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최근에는 양방향 맞춤형 광고로 광고시장까지 거침없이 빨아들이고 있다.
경영압박에 봉착한 미디어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인적·콘텐츠 투자를 줄이면서 경쟁력이 더 약화되는 ‘침체의 소용돌이(Spiral of Downward)’에 빠져 있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글로벌 미디어의 시장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지속가능한 자금을 지원받는 BBC가 필요하다”는 영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노조 위원장의 하소연이 허망해 보이는 이유다.
실제 BBC뿐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력 미디어들의 감원 추세는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3년간 미국과 영국에서 감원된 언론 종사자는 1만3000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 추세는 2026년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가 전체 직원의 3분의 1 감축을 발표하였고, ABC의 모기업인 디즈니도 1000명의 직원을 해고하였다. 이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저널과 폭스미디어, 폴리티코도 감원을 시작하였다.
기성 언론들의 감원 정책은 경영 악화를 대비하는 단기적 처방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날로그 미디어의 종말을 막는 궁극적 대안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을 양방향 디지털 기술이나 모바일로 이동한 이용자들의 미디어 접근 양식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 한 세기 아니 멀리는 500년 가까이 대중매체들은 수용자를 독점 또는 분점하면서 정치·경제 권력과 공존해 왔다. 그 이유는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없거나 판단하기 힘든 차별화된 정보 제공 능력에 있었다. 물론 그 능력은 우수한 인적 자원과 취재 능력에서 나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성 미디어들은 정제된 정보라는 차별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10여 년 전 4차 산업혁명 붐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향후 사라질 직업군에서 미디어는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 언론 종사자 특유의 분석 능력과 창의력이 상당 기간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단 몇 분 만에 기사를 생산하고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일상 행위가 되고 있다. 불과 몇 년 만에 이렇게 변화된 것은 어쩌면 언론인 특이체질(idiosyncrasy)을 포기한 전통 미디어들이 자초한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