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숫자는 단순히 “실적이 좋다”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반도체 업계 안에서도 보기 드문 수익성입니다. 같은 시기 대만 TSMC의 1분기 영업이익률은 58.1%,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43%였습니다.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라왔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SK하이닉스 실적을 끌어올린 건 범용 D램 판매량이 아니라, AI 서버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부가 제품의 비중 확대입니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번 실적 발표에서 “1분기는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수요 강세가 이어졌다”며 “HBM과 고용량 서버용 D램 모듈, eSSD 등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가 실적을 견인했다”고 설명했죠.
AI 수요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거대언어모델 학습 중심에서 에이전틱 AI와 실시간 추론 단계로 확장되면서, D램과 낸드 전반의 수요 기반이 동시에 넓어지는 흐름입니다.
HBM은 일반 D램처럼 단순히 많이 찍어내는 제품이 아닙니다.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고, 이를 정밀하게 연결한 뒤, 고성능 GPU와 함께 작동하도록 패키징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경쟁의 핵심이 단순 생산량이 아니라 적층, 연결, 패키징을 모두 묶은 종합 기술력에 있다는 뜻입니다. SK하이닉스가 청주에 19조원을 들여 신규 생산시설을 짓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첨단 메모리와 패키징 역량을 키우기 위한 투자의 일환입니다.
더불어 SK하이닉스는 올해 투자 규모를 지난해(30조2000억원)보다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용인 클러스터 인프라 구축, 청주 M15X 램프업, EUV 장비 확보가 핵심입니다. 3월에는 2027년까지 ASML의 EUV 장비를 11조9500억원 규모로 구매한다고도 공시했습니다. 단순히 “잘 팔린다”가 아니라, 잘 팔리는 제품을 오래 공급할 수 있도록 생산능력을 미리 묶어두는 국면에 들어간 셈입니다.

회사의 설명도 같은 방향입니다. SK하이닉스는 23일 열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과거와 같은 공급 과잉 우려는 크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고객사와 공급사 모두 장기적인 수요·공급 가시성 확보를 중시하는 만큼, 예전처럼 무리한 증설 이후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이는 공급이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회사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공급 확대와 수요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지만, 속도의 차이로 인해 당분간은 수요가 공급을 앞서는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외부 분석도 대체로 같은 방향입니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분석가들이 2분기 이후 메모리 가격 상승 속도는 다소 완만해질 수 있다고 보면서도, 신규 생산능력이 실제 가동되기 전까지는 수급 제약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역시 올해 HBM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선두를 유지하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뒤를 추격하는 구도라고 분석했습니다. 공급과 수요가 예전보다 조금 수렴할 수는 있어도, 당장 공급자 우위가 무너질 상황은 아니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이런 구조는 HBM이 단순한 메모리가 아니라 AI 인프라의 핵심 병목이라는 점과도 맞물립니다. 엔비디아 같은 AI 가속기 업체는 더 높은 대역폭과 전력 효율을 갖춘 메모리를 필요로 하고, HBM은 그 요구에 가장 가까운 제품입니다. 결국 누가 GPU를 많이 만들 수 있느냐만큼, 누가 여기에 들어갈 HBM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습니다. 시장이 SK하이닉스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적 증가 폭도 가파릅니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8% 늘었고, 영업이익은 405% 급증했습니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이 AI 붐을 단순 기대가 아니라 실제 이익으로 번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들어 SK하이닉스 주가가 크게 오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이게 진짜 계속 가능한 숫자냐”는 것입니다. 회사는 당분간 가격 환경이 우호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I 수요가 계속 메모리 전반을 떠받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로이터통신은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2분기 이후 가격 상승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의 초고수익은 공급 부족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한 만큼, 신규 캐파가 본격적으로 붙는 시점부터는 이익률이 지금처럼 가파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지금 SK하이닉스 실적의 본질은 ‘메모리를 많이 판 회사’가 아니라 ‘AI 시대에 가장 비싸게 남길 수 있는 메모리를 쥔 회사’라는 데 있습니다. HBM은 기술적으로 만들기 어렵고, 수요는 빠르게 늘고, 공급은 쉽게 따라붙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72%라는 이례적인 영업이익률이 만들어졌습니다.
1만원어치를 팔아 7000원 넘게 남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지금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위치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장 뜨거운 숫자는 늘 가장 먼저 식을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었습니다. 이번 실적에서 진짜 봐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이 벌었나’만이 아니라, 이 구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일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