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온도계·마음우체국 등 체험부스 운영…박지명 센터장 "돌보는 사람의 소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15일 시흥 시화병원 본관 지하 1층. 점심시간을 앞둔 이 공간이 평소와 달랐다. '오늘, 내 마음에 똑똑'이라고 적힌 현수막 아래 네 개의 체험 부스가 차려졌고, 흰 가운과 하늘색 근무복 차림의 직원들이 하나둘 줄을 섰다.
이날 열린 '제1회 생명사랑 위기대응센터 캠페인'은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통상적인 예방 캠페인과는 결이 달랐다. 대상이 환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스는 네 가지로 구성됐다. 스스로 우울감을 점검해보는 '감정온도계와 마음검진', 정신질환과 자살예방 지식을 확인하는 'OX퀴즈', 익명으로 자신의 마음을 적어 넣는 '마음 우체국', 그리고 동료와 웃으며 사진을 남기는 '포토부스'였다.
OX퀴즈 부스 앞에서 만난 한 직원은 "매일 환자만 보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이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문제 하나하나 풀면서 '아, 내가 그동안 이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싶었다"고 했다.
감정온도계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또 다른 직원은 "숫자로 내 마음을 찍어보라고 하니 막상 펜을 못 들겠더라"며 "막연히 괜찮다고 믿고 일했는데, 점검해보니 생각보다 많이 지쳐있었다. 오늘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마음 우체국 앞에서는 손글씨로 편지를 접는 직원들이 보였다. 한 직원은 "누구에게 보내는 건 아니고, 나한테 쓰는 것"이라며 "평소에 나한테 수고했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써봤다"고 웃었다.
점심을 마친 한 의료진은 "업무를 잠시 멈추고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마음 상태를 진단해 볼 수 있어 스스로를 돌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시화병원 생명사랑 위기대응센터는 응급의료센터에 내원한 자살시도자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치료와 상담, 사후 관리까지 이어가며 지역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위기 상황의 환자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만큼,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정서적 부담은 일반 진료과와 비교할 수 없다. 이번 캠페인이 의료진의 소진 예방에 초점을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박지명 시화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센터장은 "돌보는 사람의 소진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행사"라며 "이번 캠페인이 환자를 돌보는 직원들에게 잠시나마 재충전과 힐링의 시간이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의료진과 센터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공고이 해 지역 내 자살 예방과 자살시도자에 대한 신속하고 전문적인 치료가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을 지킨 김용기 부센터장은 마지막까지 부스 앞에서 직원들을 맞으며 OX퀴즈 정답을 안내하고 감정온도계 결과를 같이 들여다봤다. 그 모습 자체가 이 캠페인이 전하려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환자를 살리는 손은 누군가 먼저 잡아줘야 한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