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성수 등 핵심 사업지 수주전 ‘과열’⋯입찰 중단·무효 사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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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5구역 정비계획 조감도. (사진제공=서울시)

서울 압구정·성수 등 핵심 정비사업장 수주전이 과열되고 있다. 경쟁사 서류를 몰래 촬영하다가 입찰 절차가 멈추고 불법 홍보로 입찰이 무효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1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압구정5구역 시공사 입찰 과정에서는 경쟁사 서류를 몰래 촬영한 사건이 발생했다. DL이앤씨 관계자가 볼펜형 카메라로 촬영하다 현장에서 적발된 것이다. 해당 사업지에는 현대건설과 DL이앤씨가 입찰에 참여했다. DL이앤씨는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조합에 제출했다.

현대건설은 이번 사안을 공정 경쟁 질서를 훼손한 중대한 위법 행위로 보고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현대건설은 “입찰서류 무단 촬영은 경쟁의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며 “정비사업 수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비정상적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공정 경쟁 원칙이 무너지면 피해는 결국 조합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클린 수주 원칙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관할 구청인 강남구도 제동을 걸었다. 조합이 무단 촬영 논란과 관련해 요청한 유권해석에 대해 중간 회신을 하면서 최종 결과 통보 전까지 시공사 선정 절차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유권해석 결과에 따라 시공사 선정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압구정5구역 재건축은 압구정 한양1·2차를 재건축하는 사업으로 총 공사비 1조5000억원 규모다. 단지 규모는 압구정 재건축 내에서 상대적으로 작지만 전통 강남 부촌이라는 상징성이 커 수주 경쟁이 과열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강 변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히는 성수전략정비구역 일대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성수1지구에서는 지난해 조합장을 둘러싼 업무상 배임 의혹과 시공사 유착 가능성 논란이 불거지며 경찰이 조합 사무실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삼성물산과 포스코이앤씨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 신반포19·25차에서는 포스코이앤씨의 서류 유출 의혹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주전 과열의 배경으로 사업성 높은 물량 집중과 장기 일감 확보 경쟁을 꼽는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나오는 사업지들이 압구정·성수·반포 등 사업성이 좋은 핵심 입지에 몰려 있다”며 “이 시기를 지나면 정비사업 물량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 건설사들이 지금 수주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 간 브랜드 격차를 좁히기 위한 경쟁도 영향을 미친다”며 “제안 전략을 선점하려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나오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입찰 무효·재입찰 악순환⋯조합원 피해 현실화

수주전 과열은 결국 조합원 피해로 이어진다. 성수4지구는 2월 시공사 선정 입찰 마감을 앞두고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의 불법 홍보가 적발되며 시공사 선정이 무효 처리됐다. 현재 재입찰 절차가 진행 중이며 시공사 선정 일정은 약 3개월 지연됐다.

과거 강북 최대 재개발 사업인 용산구 한남뉴타운 3구역 역시 과열된 수주전으로 입찰 절차가 취소된 바 있다. 당시 현대건설·DL이앤씨(당시 대림산업)·GS건설이 입찰에 참여했으나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고 조합에 입찰 무효를 통보했다. 검찰은 이후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재입찰이 진행되며 사업은 당초 2019년 12월에서 2020년 6월로 약 6개월 지연됐다.

당시 수주전에서는 조합원 부담을 낮추는 각종 파격 조건이 경쟁적으로 제시되며 과열 양상이 두드러졌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건설사 제안 내용을 검토한 결과 약 20여 건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32조의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토부는 △조합 사업비 무이자 대여 △임대주택 비율 0% 제안 △조합원 분양가 3.3㎡당 3500만원 이하 보장 등이 문제 될 수 있다고 봤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처럼 과열된 뒤에야 지자체가 개입해 제동을 거는 방식이 반복되면 결국 피해는 조합원에게 돌아간다”며 “입찰 방식 단순화나 절차 투명화 등 과열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유사 사례가 반복되고 있지만 제재 실효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금품 제공이나 불법 홍보 등 금지 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만 입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편법·비정상 행위에 대해서는 적용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금지 행위에 대한 가이드는 이미 마련돼 있지만 이를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문제”라며 “다만 이번처럼 입찰 지연 등 사업 자체에 영향을 줄 정도의 사례가 나오면 업계 전반적으로 경각심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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