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F는 전쟁이 내년까지 이어지는 최악의 경우 물가상승률은 6%(세계 기준)에 이를 것으로 봤다. 이전과 같은 소비를 해도 지출은 그만큼 더 늘어난다는 의미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보이지 않는 임금 삭감’인 셈이다.
중동 전쟁이 촉발한 충격은 단순한 지정학 리스크를 넘어 우리 경제의 취약한 구조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에너지·비료·사료 등 공공요금, 식탁물가와 직결되는 핵심 재료 대부분이 해외 공급망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비용 상승으로 귀결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물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가 28년 만에 최대 상승폭(16.1%)을 기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직격탄을 맞은 원유의 상승률(83.8%)은 1차 오일쇼크 당시인 1974년 1월(98.3%) 이후 52년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미국‧이란 전쟁 한달 만에 전해진 역대급 충격이다.
수입물가는 통상 3~6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끝난다 해도 물가 충격의 파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온전치 못한 현지 석유·가스시설 복구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중동 분쟁의 불씨는 언제 또 타오를지 모른다. 고물가가 일상이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고물가에 익숙하지 않다. 정부의 단기 처방에 의존해 버티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제품 가격을 통제하는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가 대표적이다.
시장기능 훼손 등 부작용은 어김없이 생겨났다. 정유사, 주유소들은 팔수록 손해를 입고, 에너지 절약이 시급한 때에 외려 유류 소비가 늘었다. 결국 다 세금이다. 총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과 관련된 예산이 5조원 들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다 보니 유류값이 전 세계에서 제일 싼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가격을 내려놓는 게) 100% 잘한 일이냐에 대한 반론이 있는데 일리 있는 지적인 것 같다”고 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선명하다. 고물가를 상수로 두고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가격 통제나 보조금 중심의 방어적 대응은 단기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구조적 해법이 되지 못한다.
종전 이후에도 공급망 재편, 운송비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여파는 상당 기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원자재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산업계와 긴밀하게 협력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위기 상황 시 가격은 시장에 맡기되 취약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원자력발전 확대,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에너지 절약 생활화 등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적극적인 통화정책도 필수다.
지금의 위기를 단순히 지나가는 소나기로 여긴다면 우리 경제는 고물가라는 거대한 늪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수 있다. 위기는 반복되고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다음번엔 버틸 수 없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