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조 달한 증권 모험자본… 사모펀드는 '그림의 떡'[모험자본서 소외된 PEF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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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증권업계가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를 통해 80조원에 달하는 거대 유동성을 빨아들이며 시중자금 블랙홀로 부상했다. 하지만, 정작 기업 구조조정과 중소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 온 사모펀드(PEF) 업계는 증권사 모험자본 투자처에서 소외돼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는 7개 증권사(KB·NH·미래에셋·신한·키움·하나·한투)의 발행어음 잔액 54조167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말 43조원에서 약 25% 증가했다. 여기에 IMA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한국투자증권은 1~4호 IMA를 통해 2조5000억원을 모집했으며, 미래에셋증권은 2000억원 규모의 상품을 전량 판매했다. 최근 인가를 받은 NH투자증권 역시 4000억원 규모의 1호 상품을 성공적으로 모집했다.

증권사 모험자본 유입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추세를 고려하면 전체 IMA 및 발행어음 조달 시장은 8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대전환 정책도 시장 확대에 힘을 싣는다. IMA 및 발행어음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는 조달액의 일정 비율을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한다. 주요 5개 증권사가 향후 3년간 공급해야 할 모험자본 규모만 약 20조4000억원에 이른다.

뭉칫돈이 생산적 금융의 종잣돈으로 쌓이고 있지만, 자본시장의 주요 축인 PEF 업계는 소외감을 토로한다. 증권사가 IMA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을 기관전용 PEF에 출자하더라도, 이를 모험자본 공급 의무 이행 실적으로 인정받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모험자본 인정 범위에 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신기사), 국민성장펀드 등은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기관전용 PEF는 명단에서 빠졌다. PEF가 국민성장펀드의 하위 펀드로 참여하는 경우에는 간접적으로 포함될 여지가 있으나, 증권사 입장에서는 모험자본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기관전용 PEF 출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금융당국이 PEF를 모험자본에서 제외한 이유에는 자산 운용의 불투명성이나 대기업 계열사 지원 등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미 시행령 내에 충분한 컨트롤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리스크가 낮은 '중견기업 및 A등급 채권' 투자액에 대해 모험자본 공급 의무액의 30%까지만 실적으로 인정하는 한도를 설정했다. 또한, 대기업 계열사가 발행한 채권은 아예 모험자본 범위에서 제외했다.

결국 80조원에 달하는 거대 자금이 생산적 금융이라는 이름 아래 중소·벤처기업 투자나 정책 펀드 등으로 향하고 있지만, 정작 기업 구조조정과 성장을 주도하는 PEF 시장으로는 온기가 전달되지 않는 소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책적 모순도 지적된다. 정부가 주도하는 국민성장펀드는 구조상 PEF 운용사가 하위 펀드를 맡아 기업 구조조정이나 첨단 산업에 투자하는 형태가 대다수다. 즉, 정부가 인증한 펀드를 통하면 PEF 투자가 모험자본으로 인정되지만, 증권사가 직접 전문성을 가진 PEF에 자금을 맡기는 행위는 모험자본 공급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 자금이 종투사로 집중되며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PEF 업계는 그 낙수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모험자본의 정의를 보다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거대 자금이 특정 투자 수단에만 쏠리는 반쪽짜리 활성화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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