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이효석 선생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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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독자로서 나는 한국소설 문학을 비교적 일찍 만난 편이다. 대관령 동쪽 아래 산촌에서 태어났지만 집에 읽을거리가 흔했다. 그 책들은 강릉에 있는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아버지가 사온 책들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마을에 해가 떨어지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책을 보는 일 말고는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는 한국대표문학전집을 사오셨다. 이광수와 김동인에서부터 시작해 이호철 선우휘까지 당시 한국소설문학을 총망라한 12권짜리 전집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책을 내 생애의 가장 큰 보물처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강원도에서 태어난 이효석 선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메밀꽃 필 무렵’을 읽은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어느 날 ‘메밀꽃 필 무렵’이란 짧은 단편소설을 읽었는데, 이게 바로 가슴에 와 꽂힐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마 내가 왼손잡이여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은 왼손잡이를 유전이라고 여기지 않지만, 어머니를 닮아 왼손잡이인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유전처럼 여기고, 소설 속에 나오는 장돌뱅이 허생원과 동이의 관계 역시 그렇게 여기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은 늦게 보았어도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봉평은 일찍부터 알았다. 내가 태어난 강릉과 이효석 선생이 태어난 봉평 사이엔 동서의 관문과도 같은 대관령이라는 큰 고갯길이 있다. 영동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전 봉평은 강릉에서 서울로 오가는 국도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외진 마을이었다.

어린 시절 그런 봉평 마을 우체국에 일하던 동네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를 찾아 동네의 다른 누나가 봉평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는데, 1960년대 후반 우리 마을과 마찬가지로 봉평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깃불 대신 남폿불을 밝힌 봉평 다방 얘기를 했다. 본 것도 아니라 단지 전해 듣기만 한 이야기인데도 남폿불을 밝힌 봉평 다방의 저녁 풍경이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내가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나귀 얘기를 패러디하여 ‘말을 찾아서’라는 작품을 쓸 때에도 봉평 우체국에 근무하는 동네 누나 이야기와 남포 다방 이야기를 썼다. 서로 시대를 달리하는 작가 사이의 인연은 이렇게 작품과 작품으로 맺어진다. 이효석 선생이 ‘메밀꽃 필 무렵’을 쓴 것은 1936년이고, 내가 ‘말을 찾아서’를 쓴 것은 그보다 60년 후의 일이다.

그러나 그 작품을 쓸 때까지도 나는 어린 시절 동네 누나로부터 말로만 들었던 봉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였다. 강릉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데 늘 고속도로를 이용하다 보니 정작 강릉에서 가까운 봉평을 일부러 가보거나 휴식 삼아 그곳에 들를 일이 없었다. 작품을 쓰기 전 뒤늦게라도 봉평에 가볼까 하다가 그러면 어린 날 들었던 봉평 장터 이야기와 남포다방의 환상이 깨지고 말 것 같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봉평을 순전히 어린 날에 들었던 기억만을 바탕으로 무대 설명을 했다.

내가 처음 봉평에 갔던 것은 작품을 쓰고 난 다음이었다. 그때는 이미 이효석문학관이 번듯하게 지어져 있을 때였는데 뒤늦게 이효석 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또 몇 해 뒤 인연이 더 깊어져 제1회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시대를 달리해 태어났어도 이만하면 참으로 깊은 인연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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