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재생에너지 만능론 경계… 원전 섞은 '에너지 믹스' 절실"
정치권 외풍 막고 중장기 전략 수립할 전문가 중심 '컨트롤타워' 필요

중동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수급 위기가 커지면서 관련 정책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특정 국가나 에너지원에 의존하는 기존 구조의 한계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외부 변수에 따른 반복적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와 석유 수입선 조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를 축으로 한 에너지믹스 전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만으로 경제가 휘청이는 고질적인 취약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원유 정제 인프라 등 국내 산업 현실 등을 고려해 점진적인 확대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2일 "석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긴 해야 하긴 하지만 쉽지 않다"며 "중동산 석유를 계속해서 가장 많이 수입하되 러시아산이나 캐나다산 비중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수입산 석유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시간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중동산 석유를 완전히 배제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석유를 수입하려면 중동보다 시간이 두 배 넘게 소요된다"며 "러시아는 여전히 경제 제재 중이어서 안정적으로 들여올 수 있냐는 이슈가 있는데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여전히 가격이 저렴하고 운송기한이 짧은 중동산 석유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홍성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원유 중심으로 생산체계가 최적화돼있다"며 "다른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해보고 수입선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중질유에 최적화된 국내 정유사들의 플랜트를 경질유도 가능하게 바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정유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1.7%로 은행 금리보다 낮다"며 "투자 여력도 없는 상황에서 호주나 일본처럼 정부 재정으로 도와주면 모를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믹스의 중요성도 제기됐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등을 늘리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홍 연구위원은 "(에너지믹스는)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원자력도 논의되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석유, 가스, 석탄, 우라늄 등을 모두 믹스해서 쓴다"며 "우리나라도 수입선 다변화에만 함몰되지 말고 에너지 믹스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석유, 가스를 빨리 없애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70%가 제조업이고 수출로 먹고사는 만큼 비현실적이다"며 "재생에너지가 주를 이루되 원전, 가스, 석탄도 함께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석유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접근 방식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는 석유로 전기를 만들지 않는다. 석유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린다는 것은 손등이 까졌는데 발등에 연고를 바르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전환이라는 게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재생에너지로 만들 수 없는 나프타, 수송용 연료인 항공유 등도 있다"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하는 건 맞지만 석유를 완벽하게 대체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