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커지자 보험업계 신중론⋯세부안 논의도 지연

금융당국이 5세대 실손의료보험 중심의 세대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1·2세대 실손 계약에 대한 ‘재매입’ 방안을 검토하면서 보험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당국은 손해율의 주범인 구세대 실손을 정리해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지만 업계는 재매입 기준 설정과 비용 부담, 가입자 간 형평성 논란 등을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발표한 실손보험 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초기 1·2세대 가입자 약 1600만 건을 대상으로 한 계약 재매입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가입자가 원할 경우 일정한 보상금을 받고 기존 계약을 해지하는 동시에, 신규 실손보험(5세대)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다.
당국이 이 같은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구세대 실손의 구조적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 자기부담금이 낮고 보장이 두터운 초기 실손은 소비자에게는 유리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장기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해율을 감당해야 하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품이다. 당국은 이들 계약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실손보험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재매입이 단순한 상품 전환 이상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보상금 산정 기준이다. 보험사로서는 얼마를 지급하고 계약을 정리할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지만, 가입 시기와 납입 보험료, 연령, 건강 상태는 물론 과거 보험금 수령 이력이 가입자마다 제각각이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
형평성 논란도 피하기 어렵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보험금을 많이 수령한 가입자와 단 한 번도 청구하지 않은 가입자를 동일 선상에서 보상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기존에 별다른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전환한 가입자들과의 역차별 문제까지 고려하면 기준 설계가 결코 간단치 않다”고 지적했다.
재무적 타격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재매입이 단기간에 대규모로 추진될 경우 보험사는 상당한 보상 비용을 일시에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구세대 실손 비중이 높은 대형사일수록 그 충격이 크다. 반면 비중이 낮은 회사들은 과거 계약의 리스크 부담을 업계 전체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방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재매입은 상품 개편의 영역을 넘어 비용 분담과 정교한 보상 체계 설계의 문제로 귀결되는 양상이다. 당국은 이를 세대 전환을 앞당길 강력한 수단으로 보지만, 업계는 실행 과정에서 불거질 천문학적 비용과 사회적 갈등 가능성을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 양측이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련 논의는 점차 지연되는 분위기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협회 차원에서 재매입 방식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공유돼야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데, 현재는 변수가 너무 많아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5세대 실손 상품 자체의 설계는 마무리 단계지만, 재매입이나 선택형 특약 도입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국과의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도 현시점에서는 득실을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