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처럼 소비자를 이만큼 보호해 주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최근 만난 한 금융권 관계자의 이 말에는 자조 섞인 한숨이 묻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대형 분쟁이 터질 때마다 ‘해결사’를 자처하며 판을 정리해온 건 늘 금융당국이었다. 해외 주요국들이 법원 판결이나 자율 조정에 맡길 사안도 한국에서는 당국이 직접 배상 가이드라인을 짜고 금융사를 압박하는 구조가 정착된 지 오래다.
물론 소비자 보호라는 명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파생결합펀드(DLF)부터 라임·옵티머스 사태, 최근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이슈까지, 복잡한 금융상품 뒤에 숨은 불완전판매의 그늘은 깊었다. 정보 비대칭이 극심한 시장에서 약자인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기 어렵다.
문제는 보호의 방식이 낳은 뜻밖의 부작용이다. 분쟁의 불씨가 지펴질 때마다 당국이 개입해 정답을 알려주는 관행이 반복되면서 금융사들의 시선은 시장이 아닌 ‘당국의 입’으로 향하게 됐다. 상품 자체의 리스크보다 규제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 된 셈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상책”이라는 무력감이 팽배하다. 조금이라도 복잡하거나 새로운 구조의 상품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가위질을 당한다. 혁신적인 시도보다는 검증된 상품군에만 머무르려는 ‘안전제일주의’가 금융권을 지배하고 있다.
금융은 본래 규제 산업이다. 진입 장벽이 높고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당장 혁신이 없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 안주함이 규제 리스크와 결합할 때 생긴다. 금융사들이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지 않고 관행적인 이자 장사에 머무르고 글로벌 시장보다 국내 규제망 안에서 몸을 사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규제는 쉽고 혁신은 어렵다. 사고가 터졌을 때 쇠창살을 촘촘히 치는 것은 즉각적인 성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금융사들의 손발을 묶는다면 그 피해는 결국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소비자 보호와 금융 혁신은 대립 항이 아니다. 튼튼한 보호의 토대 위에서 건강한 혁신이 꽃핀다. 금융산업이 한쪽으로만 무게가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혁신의 동력까지 갉아먹는 과잉보호는 결국 금융 산업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