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경제안보 동맹-개도국 협력’ 충돌
국익 위한 유연한 외교전략 중요해

바이든 시절 중국견제를 위한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인 칩4(미국·한국·일본·대만)가 트럼프 2.0 시대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 견제라는 목표는 지속하되 기존 보조금 중심의 공급망 동맹에서 관세 기반의 압박 방식으로 바뀌었고, 반도체를 넘어 인공지능(AI)과 핵심 전략광물자원의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칩4의 확장판이자 트럼프식 경제안보전략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가 올해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은 7개국(한국·일본·영국·이스라엘·호주·아랍에미리트·싱가포르)과 함께 경제안보협의체인 팍스 실리카를 공식 출범시켰다. 올해 1월 카타르·대만, 2월에는 인도가 참여했고, 중국산 저가 스마트폰 확산을 막기 위한 대규모의 ‘에지 AI 패키지 사업’(최대 2억달러 투자)도 시작했다. 트럼프발 관세폭격과 간접적인 미국 압박에 마지못해 참여하는 국가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팍스 실리카는 평화(peace)를 뜻하는 라틴어 ‘팍스(Pax)’와 반도체 핵심소재인 ‘실리카’의 합성어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추격에 조급해진 미국의 패권 야망을 엿볼 수 있다. 과거 로마 전성기인 팍스 로마, 19세기 영국의 전성기인 팍스 브리타니카, 20세기 초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까지 ‘팍스’는 글로벌 패권을 상징하는 의미다.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팍스 실리카는 중국의 희토류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AI 및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의 경제안보 동맹체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이 수요자 중심으로 확장성이 떨어졌다면, 팍스 실리카는 핵심광물자원을 넘어 공급자 중심의 첨단산업 공급망 생태계를 포괄하면서 향후 미중 간 치열한 공급망 블록화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참여 국가 간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AI 인프라, 컴퓨팅·반도체, 첨단제조, 데이터 보안, 광물 정제·가공, 에너지 등 다양한 경제안보 분야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이콥 헬버그 미국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은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팍스 실리카를 통해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고, 베선트 재무부 장관도 핵심광물 공급망이 특정 국가(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된 것을 지적하며, 미국 주도의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빗대어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은 트럼프발 글로벌 불확실성과 힘의 외교에 의한 주변국과의 마찰 심화의 틈을 타고 주변 세력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 글로벌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딥시크의 확장성이다. 미국의 고비용·폐쇄형 AI에 대응해 중국은 저비용·오픈소스의 딥시크 모델을 기반으로 개도국 신흥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또한, 작년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19개 자원 부국과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참여하는 ‘녹색광물 글로벌 경제·무역협력 이니셔티브’ 이른바, ‘희토류 동맹’을 공식 출범시켰다. 미국 주도의 경제안보 규범에 맞서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협력강화라는 명분 아래 중국 주도의 핵심광물 공급망의 우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속내다. 특히 광물자원 부국을 중국 중심의 세력권으로 묶는 희토류 공급망 블록을 구축해 영향력을 더욱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 19개 광물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이 광물자원 원석과 광산을 제공하고, 중국은 정련, 가공기술과 자본, 설비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광물자원 글로벌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이 부랴부랴 팍스 실리카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국우선주의를 시작으로 트럼프의 영토확장 야심과 중동사태 등 일련의 행위로 인해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팍스 실리카가 얼마나 순항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중국패권에 의해 동아시아 평화가 오는 것을 의미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막기 위한 미국의 전방위적인 견제와 제재는 지속될 것이다.
글로벌 지정학, 지경학의 급변과 복잡한 함수관계 속에 국익과 생존을 위한 유연한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기술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