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출금으로 ‘자기자금’ 꾸며 또 대출…‘744억 편취’ 기업은행 전직원 공소장 보니

허위 계약서·자기자금 가장 반복
대출금 돌려 추가 대출 받는 구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검찰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기업은행 직원 출신 부동산 시행업자가 744억원 상당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허위 계약서 제출과 자기자금 가장 등 수법을 반복 사용해 은행 여신심사 기준을 무력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이희찬 부장검사)는 최근 IBK기업은행 직원 출신 부동산 시행사 대표 김모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검찰은 김 씨가 기업은행 직원들과의 유착관계를 이용하고 허위 계약서 제출과 자기자금 가장 등 방식으로 은행을 속여 총 744억원 상당의 불법 대출을 받아낸 것으로 판단했다.

특히 본지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씨는 2017년 말부터 2023년 말까지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거나 지배한 여러 법인과 지인 명의를 이용해 기업은행으로부터 208억4000만원 상당을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의 수법은 은행의 대출 심사 기준을 역이용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기업은행은 통상 운전자금 대출 심사에서 업체 현황과 자금 용도 관련 자료 등을 토대로 사업 현황과 자금 사용의 타당성, 상환 능력 등을 검토하는데, 김 씨는 실체가 없거나 형식에 불과한 계약서를 제출해 실제 사업이 진행 중인 것처럼 꾸며 심사를 통과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예컨대 김 씨는 직원을 명의상 대표이사로 올린 A 회사와 자신이 설립한 분양대행사 사이에 분양대행 계약이 체결된 것처럼 꾸민 뒤 관련 계약서를 은행에 제출했다. 두 회사 모두 김 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법인이었지만, 외형상으로는 시행사가 분양대행사에 업무를 맡긴 정상적인 사업 구조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이어 분양대행 보증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운전자금 대출을 신청해 은행에서 30억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해당 보증금은 분양대행과 무관한 허위 명목이었고, 대출금은 토지 매입 계약금과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사용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자금 대출의 경우 일정 비율의 자기자금을 먼저 투입했는지가 핵심 심사 기준이 됐다. 그러나 김 씨는 지인에게서 돈을 일시적으로 빌려 입금해 두는 방식 등으로 자기자금이 투입된 것처럼 가장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 법인 명의로 받은 대출금이 다른 법인의 자기자금처럼 활용되며 추가 대출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B 회사 명의로 받은 대출금을 김 씨 개인 계좌를 거쳐 C 회사 계좌로 옮긴 뒤 김 씨가 사업에 자체 자금을 투입한 것처럼 꾸미는 식이다.

검찰은 김 씨가 기업은행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은행의 신설 중소기업 대출 지원 시스템과 여신심사 절차를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악용해 타인 명의로 여러 법인을 설립한 뒤 대출을 받아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씨가 국책금융기관을 사금고처럼 이용했다”며 “기업은행 임직원들은 친분과 금품수수 등으로 유착돼 부실한 대출 심사를 통해 과다하거나 지원 불가능한 대출을 승인하는 등 조직적인 불법 대출 비리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금품을 받고 불법 대출이 승인되도록 관여한 혐의를 받는 기업은행 여신심사센터장 조모 씨 등 은행 임직원 10명도 김 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가운데 각 대출 건별 계약의 실체와 실제 자금 사용처, 자기자금 투입의 진정성 등이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사건에 연루된 직원 6명에 대해 면직·정직 처분을 했다”며 “부당 대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임직원 가족과 퇴직 직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여신 전결권 남용을 막기 위해 담당 업종 순환제와 동일 지역 심사 제한 등 심사협의회 운영을 강화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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